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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던 일본 버블 경제 시절, 어떻게 시작됐을까

by 칲 조 2024.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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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버블 경제는 무분별한 통화 공급으로 부동산과 주식 시장으로 자금이 비정상으로 몰렸던 1986년부터 1991년 사이를 의미합니다. 버블 경제가 붕괴한 후 1,500조 엔에 달하는 자산은 말 그대로 거품처럼 사라졌고, 일본 경제는 깊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었는데요.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아베노믹스 등 특단의 처방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버블 붕괴 이후 30년간 일본 경제는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죠.

 

오늘은 1980년대 일본 버블 경제의 형성과 1990년대 버블의 붕괴 과정에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찬란했던 80년대 일본과 플라자 합의

💪 세계 2위 경제 대국이었던 일본

1980년대 초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파탄 상태에 빠져있던 일본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재기에 성공했는데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높은 생산성과 저렴한 노동력으로 수출 중심의 산업을 구축했습니다. 특히 자동차 산업에서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국제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했죠.

💴 엔화 환율 조정해라

1985년 미국은 만성적인 대일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일본의 엔화 가치의 절상을 요구했습니다. 일본의 수출경쟁력을 약화하기 위해서였는데요.

 

당시 레이건 정권은 달러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무역적자 폭이 확대된 가운데, 저렴한 일본 상품의 인기로 미국 제조업이 위축하는 상황을 우려했습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뉴욕 플라자 호텔에 G5(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장관을 모아 엔화 평가 절상에 합의한 거죠.

 

플라자 합의 당시 미국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은 240엔 수준이었는데요. 불과 1년 만에 150엔 대로 조정됐습니다. 엔화 가치가 높아지면, 보통 일본 상품의 달러 표시 가격이 높아지며 미국 내 경쟁력이 약화합니다.

👛 금융완화로 민간 소비 촉진

이와 함께 미국은 일본 정부에 공공투자를 확대하고 금리를 인하해 민간 소비를 촉진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어마어마한 민간 저축을 줄여 일본의 경상흑자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저축초과액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는데요. 일본 국민은 저축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었죠.

 

민간의 높은 저축은 국내 수요 대신 국제 수요에 의존하는 수출 중심 경제 모델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엔화 평가 절상으로 수출에 적신호가 켜진 일본 정부는 국내 기업 보호를 위해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5%대였던 금리를 19861월부터 19872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2.5%까지 인하하는 등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펼쳤습니다. 80조 원 규모의 공공투자 사업을 잇달아 발표해 시중에 자금을 풀기도 했습니다.

 

🤑 고수익 투자처에 몰리는 사람들

저금리와 대규모 경제 대책 덕에 일본엔 돈이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19853.8%이던 통화 증가율이 198813%까지 증가했는데요. 시장에 풀린 자금은 곧 고수익 투자처인 토지와 주식에 몰려들었습니다.

 

은행은 금융자산 및 부동산 보유 비중을 늘리기 시작했고, 기업과 개인도 대출받아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했죠. 특히 기업이 사들인 토지의 규모는 5년 만에 연평균 8,500억 엔에서 67,000억 엔까지 치솟았습니다.

 

주식시장은 어땠을까요? 1989년 도쿄증권거래소의 상장사 시가총액이 세계 1위를 기록했는데요. 전 세계 시가총액 순위 1위에서 5위까지 기업이 모두 일본 기업이었고, 20위 내 기업 중 14개가 일본 기업일 정도였죠. 19831만 수준이었던 닛케이지수는 1989년 말 39,000 수준까지 올랐습니다.

 

💡닛케이지수: 1975년부터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사가 산출, 발표하는 가격 가중 평균 주가지수로,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 가운데 유동성이 높은 225개 종목을 기반으로 산정됩니다.


부동산 투기 광풍의 시작

😲 도쿄를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

도쿄 중심부에서 시작된 부동산 광풍은 도쿄 외곽까지 확대돼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겼습니다. 도쿄를 포함한 나고야, 교토 등 일본의 6대 도시의 땅값은 5~6년 새 5배나 급등했는데요.

 

1991, 부동산 버블의 정점을 찍었을 당시 도쿄의 평균 주택 가격은 1983년에 비해 2.5, 상업지의 경우는 3.4배 수준까지 상승했죠. 일본 부유층들이 밀집한 고급 주택가인 도쿄의 미나토구 지역은 9배까지 올랐습니다.

 

당시 도쿄를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는데요. 1986년부터 89년까지 일본에서 땅값이 올라 발생한 자본이득은 1,452조 엔으로, 1986년 일본 국내총생산(GDP)2.1배에 달합니다.

🏠 부동산 투기 성행

급격한 부동산 가격 상승은 투기를 부추겼습니다. 당시 일본의 매스컴은 일본의 부동산 땅값은 반드시 계속 상승한다는 토지신화로 도배됐는데요.

 

사람들은 부동산에 투자하면 계속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죠. 은행은 대출을 적극적으로 허용하며 이 심리를 이용했습니다. 은행끼리 대출 경쟁이 붙어 부동산을 담보로 평가액의 120%까지 대출이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부풀어 오른 건 주거비용의 급증으로 이어졌습니다.

 

사회적 불평등과 주거난이 심화하는 문제가 따라왔죠. 임대료가 폭등하면서 내 집 없는 서민들은 멀리 도시 외곽으로 쫓겨나기 시작했는데요. 1980년대 중후반 도쿄 위성 도시의 인구는 300만 명이나 증가했습니다.

🖼미국 부동산에 명화까지

일본의 부동산 투기 광풍은 국내를 넘어 해외 부동산에까지 확대됐습니다. 특히 비교적 높은 안정성과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미국을 향한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어졌는데요.

 

1989년 미쓰비시 그룹이 뉴욕의 맨해튼 중심부에 위치한 록펠러 센터를 인수하려 한 사건은 제조업 중심의 착실한 수출국 일본이 해외 부동산의 큰손으로 부상하게 된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죠. 한편, 일본의 대기업과 부동산 회사들이 주목한 또 하나의 투기 대상은 명화였는데요.

 

금융과 부동산, 거품 경제로 호황을 누리던 일본의 기업이 해외 명화 경매 시장에 뛰어들면서 명화의 가격도 폭등했습니다. 1987년 일본의 보험회사 손보 재팬 닛폰 코아는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3,629만 달러에 낙찰받았는데요. 이 낙찰가는 무려 17년간 세계 명화 경매 시장 사상 최고가로 남아 있었습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1991

금리 인상과 부동산 대출 규제

일본 정부는 치솟는 토지 가격을 억제하기 위해 1987년 토지 거래 감시구역 제도를 마련하고 각 은행에 부동산 구입 등 투기 목적의 대출을 억제해 줄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땅값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은행의 대출 경쟁도 수그러들지 않았는데요. 결국, 일본 정부는 895월부터 908월까지 금리를 2.5%에서 6%로 인상했습니다. 그리고 904월에는 신규 부동산 대출을 규제하는 총량규제를 도입했죠.

 

🎢 빠르게 꺼지는 거품

시중에 자금이 마르면서 주가가 내려가기 시작했고, 대출 규제로 투기성 매물이 쏟아지면서 땅값은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부동산과 주식 가격은 1991년 이후 10년 만에 버블이 생기기 전인 1983년 수준까지 떨어졌죠. 해당 기간 일본의 집값은 주택지의 경우 최고 60%, 상업지의 경우 80%가 폭락했습니다. 일본의 실질 GDP 성장률은 1990년부터 하락세로 전환했는데요.

 

경제학자들은 이때부터 일본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을 경고했지만, 일본 정부는 1991년까지 단기적인 조정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고수했습니다. 19922월이 되어서야 일본 정부는 19915월 이후 경기가 후퇴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는데요. 그러나 이미 부풀 대로 부푼 거품이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등의 전방위적 공격을 받고 일순간에 무너진 후였죠.

😨 쌓여만 가는 부실 채권

버블의 붕괴는 가장 먼저 부동산 업계를 강타했습니다. 땅값 하락으로 은행 대출을 갚지 못할 처지의 부동산 회사와 건설업체가 일시에 무너지기 시작했는데요.

 

본업을 잊고 대규모 부동산 투자에 나섰던 교와, 아리토요카세이 등 수십 개의 알짜 기업이 줄줄이 도산했습니다. 잇따른 파산은 은행에 엄청난 부실 채권을 안겼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채권 관리 기구를 신설했을 정도로 일본 경제의 골칫거리로 떠올랐습니다.

 

🏦 은행마저 줄도산

버블 붕괴 이후 부실 채무가 누적되고 기업과 은행의 부채 및 대출 조정이 지속되면서 결국 장기 불황이 시작됐습니다. 1997년에는 야마이치 증권, 홋카이도타쿠쇼쿠 은행 등이 누적된 채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연달아 도산하기에 이르렀는데요.

 

시중은행에 12조 엔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지만, 연쇄 부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죠. 부동산 대출을 내줬던 몇몇 사금융업체는 정부의 감시망을 피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채권을 회수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일본에선 불법 채권 회수업자들의 위협을 피해 야반도주를 도와주는 신종 직업이 생겨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심지어는 경영에 책임을 졌던 기업인들이 할복으로 종업원과 고객에게 사죄하는 사건까지 발생했죠.

 

😭 중산층의 붕괴

은행의 줄도산으로 투기 목적이 아니었던 일반 대출자도 곤경에 처했습니다. 은행에 담보로 맡긴 집이 경매 처분당하면서 개인 파산자도 급증했는데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기업까지 계속되는 불황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투기는 물론 내 집을 장만할 엄두도 못 냈던 서민들은 정리해고 대상 1순위가 됐습니다. 이렇게 소득이 줄면서 서민이 지갑을 닫기 시작하자, 일본 경제는 본격적으로 장기 침체의 굴레에 빠져들었습니다.

 

물가하락으로 내수시장이 위축하고, 내수시장 위축으로 기업실적이 악화해 임금과 고용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시작된 거죠. 그 결과 중산층 1억 명 사회라는 자부심은 옛말이 되고, 중하류 계층이 일본 사회의 80%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버블은 일본 경제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1990년대 이후 인구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해 일본 경제는 역동성을 상실하면서, 경기 회복의 모멘텀을 되찾기는 더욱 요원해졌죠.

연합뉴스

 

그러나 최근 일본 증시가 3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을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30년간 제자리걸음이었던 임금도 인상되기 시작했는데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와 생산성 저하 등 고질적인 문제는 여전하지만, 일본 경제가 변곡점을 맞이했다는 평가가 우세합니다.

 

https://chief-cho.tistory.com/616

 

34년만에 닛케이지수 3만 9000포인트 돌파, 일본 경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요즘 일본 증권 시장(증시) 분위기가 정말 좋습니다. 지난 22일에는 일본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지수가 3만 9000포인트를 돌파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요. 닛케이지수는 지난해부터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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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일본이 2016년부터 이어 온 마이너스 금리를 끝내고, 금리 인상에 나서리란 전망도 나오는데요. 작년 새롭게 부임해 변화를 선언한 우에다 일본은행 총재의 행보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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