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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LETTER/국제 LETTER

대만 총통 선거,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결정하는 순간

by 칲 조 2024.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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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 13일 대만에서 치러진 선거를 주목해야 할 이유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이미 복잡한 국내 정치에 신경 쓰느라, 외국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기 어렵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대만 선거는 2024년 들어 가장 중요한 세계적 이벤트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저 아시아 어느 섬나라의 일이 아니라, 전 세계가 눈길을 두고 결과를 지켜본 중대한 사건이었거든요.

 

대만이 최근에 치른 선거는 4년에 한 번씩 진행되는 총통 선거와 입법위원 선거로, 한국의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를 동시에 개최한 것과 같습니다. 대만이 어떻게 나아갈지를 결단하는 중대한 순간이었는데요. 이 결정은 단지 대만의 운명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와 전 세계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이 지역에 위치한 국가들은 이번 선거의 결과가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대만의 고민: 2의 홍콩과 제2의 우크라이나

대만 선거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대만은 제2의 홍콩이 되지 않기 위해, 더불어 제2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고심하는 상황입니다. 이번 선거는 그 고민에 나름의 답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었죠.

 

😨 대만의 딜레마

대만은 홍콩과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딜레마를 마주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중국에 흡수되어 홍콩처럼 중국공산당 통치 아래 놓이는 것을 결사반대하는데요. 하지만, 중국과의 통일을 반대할수록 중국의 군사적인 위협은 점점 커지니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저 남 일 같지 않습니다. 전쟁은 피하면서 지금의 사실상(de facto) 독립을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양안 통일의 결과는 홍콩?

Election Study Center, NCCU-Taiwanese, https://esc.nccu.edu.tw/PageDoc/Detail?fid=7801&id=6963

 

👣 통일과 독립

위 그래프는 19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대만인에게 통일과 독립에 관한 의견을 물은 여론조사입니다. 가능한 한 빨리 통일해야 한다는 답변은 1~2%대에 머물 정도로 미미한 수준인데요.

 

주목해야 할 부분은 현 상태를 유지하되 통일로 나아가자는 응답입니다. 1990년대만 해도 응답자 다섯 명 중 한 명 정도는 통일을 지향하자고 답했는데, 지금은 5%대를 오갈 정도로 비율이 쪼그라들었습니다.

🇭🇰 홍콩이라는 사례

2019년부터 2020년에 이르는 홍콩 사태는 대만의 반통일 정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국이 반환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홍콩은 결국 중국공산당의 통치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대만인들은 홍콩의 현실과 통일 후의 대만이 겹쳐볼 수밖에 없었죠.

 

현재 대만에서 주류의 위치를 점한 시각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현 상태를 무기한 유지하는 것(32.1%) (상단 파란 그래프)

둘째 현 상태를 유지하고 통일이나 독립이냐는 나중에 결정하는 것(28.6%) (상단 검은 그래프)

셋째 현 상태를 유지하되 독립을 향해 나아가는 것(21.4%) (상단 초록 그래프). 대만의 정치 지형에서 통일 논의를 진전시키는 것은 사실상 배제된 선택지가 되었습니다.

 

🏛정치적 변화

()중국· ()통일의 정서는 정치적인 결과물로 나타났습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대만 정권은 중국국민당(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쥐었는데요. 2016년 민주 진보당(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이 정권을 교체한 뒤 대만은 지금까지 민진당 정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민당은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왔습니다.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은 중국과 대만의 분단 이후 60여 년 만에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기도 했을 정도인데요. 이런 국민당을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민진당이 몰아냈다는 건 대만이 중국과 남남으로 살기로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부르는 기시감

🇨🇳 중국의 위협

중요한 문제는 중국이 이러한 선택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만이 중국과의 거리를 늘릴수록, 2016년 민진당이 집권한 이후로, 대만과 중국 간의 외교적이고 군사적인 긴장은 계속해서 고조되었습니다.

 

🇺🇦 우크라이나의 현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대만은 이를 무심코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아시아 건너편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권위주의 국가가 군사력을 동원하여 '통일'을 추진하는 가능성이 현실에서 증명해 버린 겁니다. 대만으로선 타이베이가 제2의 키이우가 되지 않으리라고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 더 궁금하다면??

https://chief-cho.tistory.com/215

 

G2 회담, 대만해협은 어떻게 흘러갈까

한반도가 한 축의 한쪽 끝이라면 대만해협은 그 반대쪽 끝입니다. 어느 쪽이 흔들리든 결국엔 반대편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요. 선뜻 이해되지 않겠지만, 냉전이란 게 그렇습니다. 세계가 두

chief-cho.tistory.com


선거 결과: 라이칭더 당선과 차이잉원 2.0

통일에 반대하면서도 전쟁을 각오할 수 없는 딜레마 속에서, 올해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의 임기가 만료되었습니다. 딜레마를 어떻게 타개할지를 두고 다시금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2016년부터 이어진 민진당 차이잉원의 노선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2016년 이전 국민당 마잉주 총통이 그랬듯 중국과 우호적인 대화를 전개할 것인가. 대만은 전자에 힘을 실었습니다.

 

한국일보

 

👪 치열한 삼파전

이번 총통 선거는 민진당과 국민당, 그리고 새로운 제3세력 대만민중당(민중당)의 삼파전으로 펼쳐졌습니다.

 

1️⃣  민진당에선 2020년부터 차이잉원 정권에서 부총통을 지내고 있는 라이칭더(賴清德)가 출마했습니다.

 

2️⃣  국민당의 허우유이(侯友宜) 후보는 경찰 출신의 정치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기도에 해당하는 신베이시의 부시장과 시장을 지냈습니다.

 

3️⃣ 커원저(柯文哲) 후보는 대만의 전통적인 양당 경쟁 구도에 균열을 낸 신진 정치인입니다. 민진당과 국민당 사이에서 중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젊은 세대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세 후보가] 서로 공방을 주고받고 있으나 후보들은 사실상 외교 정책의 우선적 목표에 있어서 대략 동일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Despite their attacks on one another, the candidates are in fact broadly aligned on their foreign policy priorities.”

“Taiwan’s Status Quo Election”, <Foreign Affairs>

 

 

🤝 대만의 컨센서스

이번 대만 선거에서는 무엇보다 세 후보의 공통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세 후보의 차이점만 바라보다가는 대만의 국민과 정치인이 합의한 중대한 결정을 지나칠 수 있습니다.

 

위의 그래프를 다시 떠올려봅시다. 대만인에게 통일인지, 독립인지를 묻자 응답자의 87.9%가 일단은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독립하자는 입장(4.5%)과 통일하자는 입장(1.6%)은 사실상 폐기된 선택지입니다. 국민 차원에선 현상 유지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후보 간 공통점

세 후보도 국민의 합의점을 좇아, 당장은 현상 유지가 목표라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민진당은 대만 독립에서 한 발짝 물러서고 국민당은 통일 정책을 양보함으로써 그 사이의 선택지인 현상 유지에서 만난 모양새입니다.

 

라이칭더 후보는 독립 지향의 민진당 내에서도 강경한 급진파입니다. 차이잉원 총통보다도 적극적으로 대만 독립을 논해왔는데요. 그런 그가 이번 선거에선 임기 내에 독립을 선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통일 지향의 국민당에선 당내 주류와 달리 친()통일·()중국적인 색채가 옅은 허우유이 후보가 나섰습니다. 허우유이는 과거 국민당 마잉주 정권(2008~2016)의 노선을 거부하고, 홍콩과 같은 일국양제 식의 통일은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 후보 간 차이점

독립도 아니고 통일도 아니고 현상 유지라는 건 합의점입니다. 하지만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방책을 취해야 하는지에선 후보들의 입장이 갈리는데요.

 

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는 현상 유지를 위해서라도 중국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논했습니다. 지금처럼 긴장이 고조되기만 한다면 우발적으로라도 사달이 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반면 민진당은 중국과의 대화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중국과의 갈등을 관리해야 한다는 당위에는 동의하더라도, 그보다는 미국, 일본 등의 우방국과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승자는 라이칭더

건곤일척의 승부 끝에 제16대 대만 총통 자리는 민진당의 라이칭더에 돌아갔습니다. 이로써 민진당은 정권을 12년까지 연장하게 됐습니다. 라이칭더가 급진적 입장을 굽혀 현임 차이잉원 총통의 노선을 따르겠다고 약속한 만큼, 차이잉원 2.0 정권이 열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 차이잉원 2.0

차기 라이칭더 정부가 차이잉원 2.0 정부라면 세 가지 정책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1️⃣ 차이잉원 총통은 대만이 이미 사실상 독립 상태이므로 굳이 대만의 법적, 공식적 독립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고 봤습니다. 라이칭더가 자신의 급진적 지향을 굽히고 차이잉원 노선을 좇는다면, 굳이 독립을 거론해 중국을 자극하지는 않을 걸로 보입니다.

 

2️⃣ 차이잉원 정부는 중국의 군사적 압박, 도발, 나아가 침공에 대비해 국방력 강화를 정력적으로 추진했습니다. 라이칭더 당선인은 차이잉원을 따라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끌어올리고 국내 방위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3️⃣ 라이칭더는 차이잉원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 등의 우방국과 관계를 중시합니다. 군사적인 협력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대만-미국 간의 연계를 강화하는 행보를 밟을 걸로 예측됩니다.


전망: 중국이 전쟁을 낸다고?

대만은 라이칭더라는 나름의 결단을 내렸으니, 이제는 다른 행위자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지켜봐야 할 순서입니다. 일각에서는 민진당 정권이 연장되면 중국이 전쟁을 낼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하기도 했는데요. 전문가들은 민진당 집권이 그 자체로 중국이 전쟁을 감행하도록 만들지는 않으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 불편한 중국

중국이 민진당과 라이칭더 후보를 싫어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중국은 공공연하게 대만의 선거 국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는데요. 최우선 목표는 라이칭더의 낙선이었습니다. 중국 당국이 라이칭더의 정치적 지향을 비난하는가 하면, 그가 당선될 시 전쟁 위험이 고조되리라는 노골적인 협박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 4년의 긴장

그런 라이칭더가 차기 총통이 된 이상, 중국과 대만의 관계 경색은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중국은 차이잉원 총통의 집권 이후 대만과의 대화를 단절했는데요. 지난 8년간의 단절이 4년은 더 이어질 예정입니다.

 

아울러 중국이 점점 수위를 높여가던 대만 압박 정책도 더욱 강화될 걸로 보입니다. 대만해협에서 중국군의 군사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거나 대만에 대한 경제적인 보복이 뒤따를 가능성이 큽니다.

 

🙅 전쟁은 아니야

다만, 민진당의 재집권만으로 전쟁이 날 공산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평입니다. 중국 입장에서 라이칭더 정권은 못마땅할 테지만, 라이칭더가 차이잉원의 노선을 따르는 한 상황이 크게 변하는 건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전쟁을 운운하면서 호들갑을 떨지언정, 정말로 전쟁을 감수할 만큼의 변화는 없다는 분석입니다.

 

🇺🇸 표정 관리하는 미국

국민당이 당선되고 중국에 친화적인 정책을 펼쳤다면 미국의 계획이 어그러졌을지도 모릅니다. 중국을 포위하는 전선의 한 축이 무너지는 셈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민진당의 재집권은 미국에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인데요. 미국은 속으로는 웃으면서, 중국을 진정시키기 위해 미국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당장 사달이 나지는 않을지라도, 향후 4년간 대만해협의 긴장이 고조되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시진핑은 대만인이 점점 통일에 흥미를 잃는 데 조급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진당의 재집권으로 인해 시진핑의 인내심을 시험해야 하는 시간이 4년 연장된 셈입니다. 그사이에 라이칭더 정권이 중국의 코털을 건드는 행보를 감행하기라도 한다면, 중국은 불같이 반응하겠죠.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오는 11월에 치러질 미국의 대통령 선거입니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권좌에 오르게 된다면, 대만의 전쟁을 진지하게 걱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트럼프가 대만을 방어해야 할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직을 맡게 되고, 동시에 대만은 민진당 라이칭더 정권 아래에서 독립을 지향하며 중국과의 거리를 두게 될 경우, 이 두 가지 요인이 맞물려 중국이 러시아처럼 모험을 결심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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