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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LETTER/국제 LETTER

아시아, 태평양 정상들, 샌프란시스코에 모이다.

by 칲 조 2023.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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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 미국 대통령 바이든과 중국 주석 시진핑의 회담이 성사되었습니다. 세계 패권을 두고 다투는 이 두 대국의 정상이 만나게 되어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남쪽 우드사이드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의 계기는 아시아와 태평양 국가의 정상들이 모이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이었습니다.

 

APEC은 결코 무심하게 지나칠 행사가 아닙니다. 태평양 양편의 21개국 정상이 모이는 APEC 정상회담을 유심히 보아야만, 아시아와 태평양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거시적인 흐름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APEC의 결과물: '골든게이트 선언'

APEC 2023 의장국 미국 바이든 대통령

 

APEC은 포럼입니다. 그 자체로 집합적 행동을 하기보다는, 여러 국가가 만나는 모임의 역할을 합니다. 달리 말하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오기는 어려운 자리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의 대략적인 관심사와 입장을 확인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행사가 없습니다. 21개국 정상이 합의한 공동 선언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고 어떤 내용이 빠졌는지를 보면 우리를 둘러싼 국제 사회의 흐름이 보입니다.

 

📄 골든게이트 선언

올해 APEC은 미국이 의장국을 맡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고, 그 결과로 골든게이트 해협의 이름을 딴 공동 선언이 채택되었습니다. 채택 자체가 나름 큰 과제였습니다. 국제사회가 점차 진영별로 쪼개지고 진영 간의 입장 차이가 벌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진영 사이의 갈등을 뛰어넘어 APEC 회원국이 모두 동의할 만한 내용을 찾기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 작년과 다른 올해

올해는 공동 선언을 도출하기 위해 지난 선언에 들어갔던 내용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이야기인데 작년까지는 전쟁을 언급하는 데 회원국이 합의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습니다. 국제 사회의 입장 대립이 더욱 첨예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작년 방콕에서 도출된 공동 선언은 “APEC이 안보 사안을 다루는 포럼은 아니지만, 우리는 안보 사안이 글로벌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라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논의를 담았습니다. 전쟁이 초래한 경제적 어려움을 나열하고 대다수 회원국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라고 적었습니다.

작년엔 안보 사안을 다루는 포럼은 아니라도전쟁 논의를 선언에 담았다면, 올해는 APEC이 그런 포럼이 아니기 때문에공동 선언에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폐해가 누적되는 지금, 오히려 종전 요구가 나오지 않은 데서 국제 사회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공동 선언 대신 의장 성명(Chair’s Statement)에서 언급됐습니다.

 

🚀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올해 터진 또 하나의 전쟁에 대해서도 APEC은 회원국 모두가 동의할 문장을 찾지 못했습니다. 공동 선언에서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의장 성명에서야 각국 정상이 의견을 교환했다는 언급을 넣었습니다. 이는 미국과 아랍·이슬람 국가의 입장이 날카롭게 갈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자지구에서 계속되고 있는 위기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고, 미국 등 일부 정상이 각자의 입장을 공유했다. 또한 일부 정상은 2023년 11월 11일 개최된 아랍·이슬람 합동 정상회담의 통일된 메시지를 공유했다."

 

"We exchanged views on the ongoing crisis in Gaza. Leaders, including the United States, shared their respective positions. Some Leaders also shared the united messages of the Joint Arab-Islamic Summit in Riyadh on 11 November 2023."

 

- 의장 성명(Chair’s Statement on the APEC Economic Leaders’ Meeting) 중 일부

 


 

APEC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 지난 11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랍 국가와 이슬람교 국가의 합동 정상회담이 개최됐습니다. 회담이 도출한 공동 코뮈니케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공격을 강력하게 규탄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공격을 전쟁범죄이자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하고, 전 세계에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을 중단하라 촉구했습니다.

아랍, 이슬람 세계의 입장은 미국이 수용할 수 없습니다. 미국이 막후에서 이스라엘을 말리고 있다고는 하나, 어쨌든 미국은 이스라엘의 우방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이 정당한 자위행위라고 보는 미국은 자국 무기는 물론이고 동맹국의 무기까지 끌어다가 이스라엘에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공정하고 비차별적이며, 투명하고 포용적이며 예측할 수 있는 무역 및 투자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결의를 재확인한다."

 

"We reaffirm our determination to deliver a free, open, fair, non-discriminatory, transparent, inclusive, and predictable trade and investment environment."

 

- 공동 선언(2023 APEC Leaders’ Golden Gate Declaration) 중 일부

 

💰 경제적 협력

결국 공동 선언은 APEC 본연의 목적, 즉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 통합을 증진하는 목적을 재확인하는 데 초점을 뒀습니다. 다자 간 무역 체계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공급망을 안정화하고 세계무역기구(WTO)의 역할을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밖에도 경제 부문에서 친환경 에너지 전환, 디지털 생태계 조성 등의 방향성이 담겼습니다.

 


 

APEC 회원국은 모두 함께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공정하고 비차별적인 세계 시장을 만들겠다고 결의했습니다. 그 선언을 순진하게 들어서는 안 됩니다. 정말 APEC에 참석한 모든 국가가 견제와 반목을 멈추고 제약 없는 경제 협력을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아시아와 태평양의 무역 질서에서 주도권을 쥘지를 두고 물밑의 각축전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당장 미국만 해도 이번 APEC 회의에서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를 강력하게 밀어붙였습니다.

 

😘 미국의 구애

APEC은 미국이 아시아 국가의 정상 여럿을 만날 수 있는 드문 자리입니다. 아시아에서 전략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반드시 그 국가들을 포섭해야 하는데요. APEC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내놓은 발언만 봐도 미국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구애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원국 정상들에게 미국 경제가 인도·태평양 지역에 이바지할 수 있다거나 올해 미국 기업이 APEC 국가에 400억 달러를 투자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 미국 주도의 IPEF

문제는 APEC의 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중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히 교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으로선 중국이 아니라 자신이 더 좋은 경제 파트너가 되리라는 실질적 전망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한 미국의 야심 찬 구상이 바로 IPEF입니다.

 

2017년 트럼프 전 대통령이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탈퇴하면서 미국은 아시아에서 경제적 영향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습니다. 미국이 빠져나간 자리는 중국이 차지해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했는데요. 바이든 정부는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2022IPEF를 출범시키고 회원국과 협력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IPEF(International Partnership for Economic Forum)는 1️⃣ 무역 2️⃣ 공급망 3️⃣ 청정경제 4️⃣ 공정 경제의 네 개의 필라(pillar)를 협력 부문으로 제시하였습니다. 미국은 자국이 의장국을 맡는 올해의 APEC까지는 네 개 부문에서 협정을 체결하기를 희망했습니다.

매일경제

 

🎁 이번의 성과

14IPEF 회원국은 지난 5월 네 개 필라 중 공급망 부문에서 협정을 도출하였습니다. 이번 APEC에서는 청정경제와 공정 경제, 두 개 필라에서 추가로 협정을 만들어 냈습니다. 공급망 필라에서도 진일보한 협력 방안을 내놓았죠.

 

청정경제 협정: 청정에너지 및 친환경 기술 전환에 관한 협정을 타결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2030년까지 청정경제 산업에 200조 원 수준의 대규모 공공·민간 투자를 만들어 내기로 약속했는데요. 미국과 그 아시아 우방국 사이에서 친환경 산업 협력 체제, 이른바 그린 블록을 구축하겠다는 의도입니다.

 

공정 경제 협정: 각 회원국이 부패를 방지하고 조세 포탈을 억제하는 조처를 한다는 내용입니다. IPEF 회원국 사이의 투자와 사업 진출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고 기대됩니다.

 

핵심 광물 대화체: 핵심 광물의 공급망을 유지하기 위한 대화체를 출범하기로 했습니다. 첨단 산업에 쓰이는 광물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광물 매장 지도 작성, 정책 및 기술 공유, 무역 촉진 등으로 협력하겠다는 내용입니다. 핵심 광물에서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방안으로 풀이됩니다.

 

남은 과제는❓

남은 하나를 필라, 무역 부문에서는 협정을 타결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아시아 국가 정상이 모이는 APEC에서 자국 주도의 IPEF가 잘 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미국의 매력을 보여주려고 했는데요. 그 의도가 어그러진 셈입니다. 노동 기준과 환경 기준 등에서 회원국 간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APEC은 여러 국가가 국익을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는 자리입니다. 이런 정글 속에서 한국은 무엇을 목표로 어떤 걸음을 걸었을까요?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는 기존의 외교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APEC 일정 내내 한··일의 삼각 협력을 강조했고, 중국과의 관계에선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방과 결속 과시

APEC에서 한··일 삼국 정상의 회동이 이뤄졌습니다. 10분 정도의 짧은 회담이라 삼국 관계의 실질적인 변화나 진전이 시도되는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여러 국가가 모이는 APEC에서 삼국이 회동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협력 의지를 과시하는 상징적 행보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윤 대통령은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회담과 좌담회 등 여러 차례 만남을 갖기도 했습니다.

 

🇨🇳 만나지 못한 중국

한국, 중국 정상 모두 APEC에 참석하는 만큼 정상회담으로 관계 개선을 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모였었습니다. 실제로 회담을 위한 조율이 이뤄졌으나, 한중 정상회담은 결국 불발됐습니다. APEC 회의 직전 양국 정상이 인사를 나누며 한중 협력 증진을 희망한다는 원론적 대화를 나눈 데 그쳤죠.

 

🪑 양자 회담의 초점은

윤 대통령은 미국, 일본 외에도 칠레, 베트남, 페루 등 APEC 회원국과 정상회담을 치렀습니다. 윤 대통령은 양자 회담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으로 말미암은 안보 위험을 강조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정상회담마다 2030 세계 박람회(엑스포)를 유치하기 위한 지지를 구했다고 하죠. 윤 대통령은 APEC 세션에서도 부산 엑스포 유치를 설득하는 발언을 덧붙였습니다.


올해 APEC에선 세계의 균열과 치열한 경쟁이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중 정상회담에선 앞으로도 양국의 상호 견제와 경쟁이 이뤄지리라는 사실이 확인됐고, 세계는 두 개의 전쟁을 두고 진영을 나눠 서로 다른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그에 더해 글로벌 경제에서 첨단 산업, 친환경 산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외교전도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글로벌 질서가 꿈틀거리며 변동하는 지금,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올라타려는 한국의 고민은 더욱 깊어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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