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고차 시장에 국내 자동차 완성차 대기업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정부의 규제로 인해 이전에는 중고차 시장에 진출이 불가능했던 완성차 대기업들이 속속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밝힘으로써 기존 중고차 업계에서는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내 완성차 기업 중 1·2위인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각각 지난달 24일과 1일에 인증 중고차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중고차 시장은 실제 구매 전까지는 차의 품질을 판단하기 어려워 대표적인 '레몬마켓'으로 불려 왔는데요. 이제 대기업들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서 시장의 경쟁과 변화가 예상됩니다.
🔎 레몬마켓: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에 정보량의 차이(정보의 비대칭성)로 품질이 낮은 상품이 많이 나오는 시장을 말합니다. 미국에서 레몬은 불량품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시고 맛없는 레몬처럼, 경제 분야에서 쓸모없고 질이 낮은 재화나 서비스가 거래되는 시장을 레몬 시장이라 부릅니다.
🚗 첫발 뗀 현대차
지난달 24일, 현대자동차가 중고차 판매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팰리세이드와 제네시스 G80 등 인증 중고차를 공개하였습니다. 이는 2020년 10월 중고차 시장 진출 공식 선언 이후, 작년 1월 중고차매매업 사업자 등록을 마친 지 3년 만의 일입니다. 현대차는 중고차 물량의 확보부터 상품화, 유통, 판매까지 전 과정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인프라를 구축했다고 밝혔습니다.
✅ 인증 중고차란
완성차 기업이 자체적으로 설정한 기준에 따라 차량을 진단, 정비하고 판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대차에 이어 기아도 지난달 25일 인증 중고차 미디어데이를 열고 사업을 출범하였으며, 어제(1일)부터 인증 중고차 서비스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다른 국내 완성차 업체인 KG모빌리티, 한국 제너럴모터스(GM), 르노코리아자동차, 쌍용차 등도 추후 인증 중고차 사업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 판매량 제한
단, 국내 완성차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점유율은 내년 2.9%, 내후년 4.1%를 넘지 않아야 합니다. 중소업체와의 상생을 고려해 중소벤처기업부가 판매량을 일시적으로 제한한 것입니다. 현대차와 기아는 중고차 시장 점유율을 2024년 4월에 각각 2.9%, 2.1%로 유지하고, 2025년 4월에는 각각 4.1%, 2.9%로 유지할 계획을 밝혔습니다.
😏 우리는 예전부터 해왔지
한편, 수입차 업계는 이미 인증 중고차 사업을 이전부터 확장해 왔습니다. 국내에 진출한 수입차 제조사인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폭스바겐, 볼보, 포르쉐, 페라리 등 21곳은 이미 인증 중고차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신차 매장에 버금가는 오프라인 전시장에서 전문 딜러와 상담할 수 있으며, 양질의 품질 보증 서비스도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왜 중고차 시장에 눈독 들이나
최근 국내 완성차 대기업들이 중고차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중고차 시장의 매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중고차 시장의 규모가 신차 시장보다 커지고 있고, 중고차의 감가상각을 줄이면 신차의 가치도 키울 수 있습니다. 또한, 미래 먹거리 산업과도 연관성이 있습니다.
📈 중고차 시장의 성장세
중고차 시장의 성장세는 눈에 띄게 높습니다. 2016년 7조 9,669억 원이었던 중고차 판매 매출액은 2년 만에 55.9% 증가해 2018년 12조 4,217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중고차 판매 업체도 2016년 5,829곳에서 2018년 6,361곳으로 늘어났습니다. 특히 작년 중고차 실거래 대수는 약 191만 대로 신차 등록 대수의 1.3 배가량에 이르렀습니다. 최근에는 고금리 여파와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신차를 구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중고차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중고 전기차 거래량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국내 전기차(EV) 보급이 늘어나며 지난 10년 새 중고 전기차 실거래 대수는 16대에서 1만 7,117대로 약 1천 배 증가했습니다.
😉 충성고객 확보
이러한 중고차 시장에서 신뢰를 얻는다면 브랜드 가치 상승과 전체 실적 증가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2005년 수입차 브랜드 최초로 중고차 거래를 시작한 BMW는 작년에 전년보다 13.4% 더 많은 1만 2,305대의 인증 중고차를 판매했습니다. 인증 중고차 제도를 통해 소비자의 불안감을 줄이고 중고차 경쟁률을 높이는 등의 전략을 펼쳤습니다. 또 소비자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중고차를 팔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면 다른 차량 대신 특정 브랜드의 차량을 고를 거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사업 확장의 발판
중고차 시장 진출은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차량의 생산부터 폐차까지 전반적인 과정을 관리하면서 소비자의 패턴과 이동 경로 등의 빅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생산, 판매 전략, 부품 수급 등의 계획을 더욱 수월하게 마련하거나 새로운 모빌리티 사업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차량 구독 서비스나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등의 신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 등장의 역사
완성차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입은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닌, 꽤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결과입니다. 현대차는 숙원 사업이라고 부를 만큼 중고차 판매 시장에 진입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동안 국내 완성차 대기업의 중고차 판매는 정부의 규제에 가로막혀 활로가 막혀 있었습니다.
🚫 대기업 안 돼
2013년 2월부터 중고차 판매업은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되어 오직 중소기업만이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중소 중고차 판매 기업과 영세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었으며, 이 때문에 SK가 중고차 사업을 엔카닷컴과 케이카로 나눠 매각한 것도 이 규제 때문이었습니다.
🤔 뒤집힌 판단
그러나 2019년 중소기업적합업종 기한이 만료되자, 2020년 3월 정부는 이를 재지정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대기업의 중고차 판매를 허락한 것입니다. 다만 중소기업사업 조정심의회의 결정에 따라 1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습니다. 이에 당시 중고차 판매 개시를 기대했던 현대차와 기아는 강한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 불신
정부가 완성차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입을 허락한 것은 중고차 시장에 대한 고질적인 불신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허위 매물과 주행거리 조작 등 중고차 시장의 문제점을 지속해서 지적해 왔는데요. 실제로 2021년 실시된 한 조사에 따르면 54.5%의 소비자가 기존 중고차 시장의 문제점으로 허위, 미끼 매물을 꼽았습니다. 성능 점검의 부실이나 객관적 품질 인증의 미비로 국내 중고차 시장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변화의 불씨가 켜졌습니다.
😠 왜 우리는 못해?
또한, 국내 자동차 업계는 수입차 기업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수입차 기업은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국내 대기업에 금지된 중고차 판매 사업을 수입차 대기업은 아무런 규제 없이 해올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벤츠를 수입하고 판매하는 한성자동차는 사업 확장에 제한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중고차 시장 주요 플레이어
1️⃣ 케이카
SK의 중고차 사업이었던 SK엔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중고차 유통 기업입니다. 2018년 SK는 중고차 사업을 철수하며 한앤컴퍼니 사모펀드에 SK엔카 오프라인 사업 부문을 매각했습니다. 한앤컴퍼니는 이를 ‘케이카’로 바꾸고 인수 첫해 매출 7,428억 원, 영업이익 106억 원을 냈습니다. 이 회사는 자체적으로 중고차를 매입하고 판매하며,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허위 매물이나 사기를 당할 가능성이 줄어들었습니다. 2015년에는 업계 최초로 환불 정책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2분기 기준 케이카의 시장 점유율은 5.8%로 영업이익은 작년 대비 35.6% 증가했습니다. 단 케이카는 약 40%의 중고차 물량을 완성차 대리점에서 들여오기 때문에, 완성차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2️⃣ 엔카
엔카는 중고차 매매 플랫폼으로 가장 많은 물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연간 120만 대의 매물과 22억 명의 누적 방문자 수를 기록하였으며, 앱 다운로드 건수는 1,000만 건으로 업계 최초를 기록하였습니다. 엔카의 강점은 다양한 중고차 정보를 제공하는 앱을 통해 간편하게 중고차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팬데믹을 거치며 중고차 거래도 온라인 거래가 일상이 됐는데 주요 중고차 앱 시장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엔카의 실사용자 수가 83만 6,900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엔카는 최근 중고차 판매 시 차량 사진만 찍어도 차량 정보를 AI가 자동으로 판별해 입력하는 AI 차량 등록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3️⃣ 리본카
케이카처럼 직영으로 중고차를 매입하고 생산, 판매합니다. 리본카는 자동차 유통 관리 전문 기업인 오토플러스가 운영하며, 독일 시험 인증 기관으로부터 품질과 안전 시스템을 인증받은 자체 정비공장(ATC)을 강점으로 내세웁니다. 이는 국내 차량 정비 분야에서 유일한 사례입니다. 테슬라 공식 인증 중고차 판매처로서 2021년 테슬라 인증 중고차의 공식 시승센터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리본카는 최대 260가지 차량 품질을 검사하고 그 결과를 고객에게 60페이지가량의 보고서로 제공하는 AQI의 운영, 차량에서 나는 냄새를 판별해 등급을 나눠 판매하는 냄새 등급제 등을 통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국내 중고차 시장은 새로운 변화와 성장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불투명하고 낙후된 중고차 시장이 개선되는 것을 소비자들은 대체로 환영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원화로 중고차 시장 전반이 위축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 몸집 커지는 시장
인증 중고차는 비록 가격이 비싸지만 신뢰성이 높아,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2025년에는 중고차 시장 규모가 50조 원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롯데그룹과 SK그룹, 자동차 대여 사업을 하는 롯데렌탈도 뛰어들 조짐이 보입니다.
📱 플랫폼의 부상
중고차의 성능과 시세 등을 간편하게 비교하고 거래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현대차와 기아는 모바일 플랫폼을 내세워 시설 확보 및 관리 비용을 줄이고 고객을 유치할 계획입니다. 현대글로비스는 중고차 거래 통합 플랫폼 오토빌(Auto bell)을 운영 중입니다. 현재 업계 1위 케이카는 모빌리티 사업을 확장하려는 다른 플랫폼 업체들과 제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 무한 경쟁의 서막
중고차 시장은 앞으로 더욱 치열한 경쟁이 예상됩니다. 대기업들의 진출로 중고차 시장이 이원화되면서, 기존의 중고차 업계도 차별화된 서비스로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중고차 거래 플랫폼 엔카닷컴은 딜러 없이 중고차 상담부터 관리를 진행할 수 있는 '엔카 믿고 센터' 오프라인 지점을 연내 신규 오픈할 계획입니다. 케이카는 '내 차사기 홈서비스'로 차량을 구매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구매 후 불만족할 경우 환불해 주는 정책을 운용 중입니다.
🤷♀️ 독과점 형성될 것
이미 신차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완성차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게 되면 독과점 시장이 될 거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는 기존 중고차 업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자사 중고차를 사들일 능력이 있는 대기업이 핵심 물량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기업들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예고되면서, 많은 소비자가 이를 환영하는 이유는 기존 중고차 시장의 불투명성과 부정확성에 대한 불만 때문입니다. 이는 중고차 시장이 레몬마켓, 즉 부정확하거나 허위 정보로 인해 소비자들이 불리한 거래를 하는 시장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제 중고차 시장은 피치마켓, 즉 우수한 상품과 서비스가 거래되는 시장으로 변모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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