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판문점에서 2024년 오물풍선까지 타임라인

 

 

💡 3줄 요약

 

9.19 군사 합의는 2018년 남북이 한반도 비핵화와 긴장 완화를 목표로 도출한 합의인데요.

 

2019년 북한과 미국의 협상이 수포가 되면서 9.19 군사 합의의 기반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9.19 군사 합의가 점점 허물어지다 결국 이달 초 효력 정지되기에 이르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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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한반도에선 어리둥절한 소식이 전해집니다. 북한이 기상천외한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건 여러 번 봤어도, 쓰레기와 거름을 풍선에 담아 보낸 도발엔 헛웃음이 나오는데요. 이에 한국 정부는 9.19 군사 합의의 효력을 전체 정지하는 수로 응했다니, 또 한 번 얼떨떨해집니다. 9.19 군사 합의가 무엇이길래 이걸 이렇게 전격적으로 그만둬도 되는 건가 싶죠.

 

오물 풍선과 9.19 군사 합의. 어리둥절한 짝이지만, 이들만 뚫어지게 보아서는 명쾌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시야를 넓혀 과거로부터 미래로 흐르는 한반도 정세의 흐름을 조망해야 합니다. 그 흐름 가운데서야 두 사건의 의미가 적절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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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판문점에서 평양까지

9.19 군사 합의는 어떤 내용을 담았고, 어째서 그런 합의가 맺어졌을까요? 이 질문을 실마리 삼아 쫓아가면, 합의가 맺어진 9월 19일을 넘어 2018년을 아울러 보게 되고, 한반도를 넘어 남·북·미의 삼각관계를 내다보게 됩니다. 9.19 군사 합의는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2018년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 정세의 문제인 셈입니다.

 

🎙 판문점 선언

2018년 4월, 장장 11년 만에 남북이 정상 회담을 개최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을 발표했는데요. 남북이 궁극적으로 한반도를 비핵화하고, 나아가 정전(停戰) 체제를 종전(終戰)의 평화 체제로 전환하는 걸 목표로 상정했습니다. 그런 목표 아래서 선언 제2조는 당면 과제를 이렇게 약속했죠.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2018.4.27)

 

 

🤝 평양의 후속 합의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2018년 9월, 남북 정상은 평양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평양의 정상 회담과 그 공동 선언은 의 연장선에 놓입니다. 판문점에서의 약속을 현실적으로 추진하는 자리였는데요. 그 가운데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겠다는 과제를 이행하기 위해서 세부적인 약속을 맺은 게 바로 , 통칭 9.19 군사 합의입니다.

📄 합의의 내용

9.19 군사 합의는 한반도의 군사 갈등에 불을 댕길지 모르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사안을 다뤘습니다. 1️⃣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군사 훈련을 중지하고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제1조 제2항, 제3항) 2️⃣ 감시초소(GP)를 철수해 비무장지대(DMZ)를 실질적으로 비무장화(제2조) 3️⃣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 조치(제3조) 등이 골자죠. 한반도 분단사 속에서 실제 아찔한 장면을 조성했던 전례가 있는 문제들입니다.

🌏 2018년의 한반도

남북은 2018년에만 무려 세 번의 정상 회담을 가졌습니다. 분단 이래 70여 년 동안 단 다섯 번만 열린 남북 정상 회담 가운데 세 번이 한 해에 내리 열렸을 정도로, 2018년은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가 급물살을 탄 시간이었습니다. 이 같은 한반도의 분위기가 4월의 이라는 대명제로 표명됐고, 그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9.19 군사 합의로 드러났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 대미 외교의 조건

그렇다면 그동안 삐딱선을 타던 북한이 왜 하필 2018년 남한과 대화에 나섰을까요? 미국에 접근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일반적입니다. 당시 북한의 최우선 관심사는 미국과 ‘빅딜’(Big deal)을 성사하는 일이었습니다.

 

전력을 다해 핵무기를 개발했으니 이를 지렛대로 삼아 경제 제재 해제라는 목표를 이루고자 했는데요. 미국이 제재만 풀어주면 앞으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남한과 평화를 이야기했을 수 있습니다.

 

🇺🇸 북미 정상 회담

을 발표하고 두 달이 흐른 2018년 6월,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최고지도자로서 역사상 최초로 미국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북미 정상 회담에서는 빅딜의 가능성이 엿보였습니다. 구체적인 조건은 이야기되지 않았으나, 북한과 미국 모두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의 체제 보장을 맞바꾸는 식의 거래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후로도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를 주고받으며 빅딜의 협상에 매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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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이후: 강대강의 대치 국면으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서 한반도의 긴장을 관리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남북 정상 회담을 치르고 9.19 군사 합의를 맺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북한으로서 9.19 군사 합의가 유의미한 건 오직 미국과 협상할 가망이 있을 때뿐입니다. 북한과 미국의 협상 테이블이 엎어진 이상 9.19 군사 합의가 찢어지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 하노이의 노딜

2018년 북한은 남한과 관계를 개선해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미국과 치열하게 조건을 다투면서 협상을 준비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북한만 아니라 남한과 미국,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정말 빅딜이 이뤄질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2019년 2월 하노이의 북미 정상 회담, 그리고 소득 없는 대실패였습니다. 북한과 미국은 결국 타협을 보지 못했고 2018년부터 이어진 모멘텀은 아주 꺾여버렸죠.

 

🇰🇵 돌아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한껏 들뜬 만큼이나 크게 실망했습니다. 미국과 협상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단념했는데요. 때마침 국제 정세는 북한이 더는 미국에 매달릴 필요가 없는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중국, 러시아, 이란이 미국과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우면서 북한의 숨통이 트였습니다. 이제 북한은 미국과 대화하는 게 아니라 맞섬으로써, 한반도의 긴장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불을 지펴서 이득을 취하겠다는 생각입니다.

 

🚫 북한의 위반

하노이의 회담이 깨지고 북한이 돌아선 순간, 9.19 군사 합의는 이미 무너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은 2019년 말 곧바로 합의를 깨는 노골적인 행보를 걸었습니다.

 

서해에서 해안포를 쏘고(2019년 11월), 비무장지대에선 남측 GP를 향해 총격을 벌였으며(2020년 5월), 비행 금지 구역을 넘어 서울, 경기 일대에 무인기를 침투시켰죠(2022년 12월). 지금까지 북한이 합의를 위반한 횟수가 3,000건이 넘습니다.

🇰🇷 한국의 새 정부

그동안 남측도 9.19 군사 합의의 취지로부터 점차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5월 정권이 교체됐습니다. 북한과 대화 내지는 협상을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는 떠나고 윤석열 정부가 세워졌는데요.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의 발언에서 그 기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를 해야 합니다.
위장된 평화로는 우리의 평화와 안보를 지킬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기반마저 다 무너진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2022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에 나서서 긴장을 완화하기보다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북한의 군사 행보를 억지하는 강경 기조를 주장합니다.

 

한미 연합 훈련

실제 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와 상반되는 행보를 걸었습니다. 9.19 군사 합의에서 남북은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 등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는데요.

 

북한이 한국과 미국의 대규모 연합 훈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정부는 2018년 이래로 연합 훈련을 축소해 북한을 달랬습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직후 연합 훈련을 “정상화”하겠다는 입장으로 그 규모를 크게 키웠습니다.

🥊 강 대 강의 대치

당초와 9.19 군사 합의가 단계적 군축을 목표했던 걸 상기하면, 그 취지는 오래전부터 무색해졌다고 봐야겠습니다. 북한은 끊임없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도발을 이어가는 한편, 남한은 도발을 강경한 발언으로 받아치고 미국, 일본과 연계하여 연합 훈련을 강화하는 모습입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고조되는 악화 일로를 걸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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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024년: 북한의 파기, 남한의 전체 효력 정지

한반도의 현실은 9.19 군사 합의로부터 점점 멀어졌고, 결국 작년과 올해에 이르면 합의가 완전히 무너지기에 이릅니다. 마치 핑퐁과도 같은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북한의 상습적인 합의 위반을 남한은 합의 일부 효력 정지로 맞받고, 이에 북한은 전면 파기를 선언해 되받았으며, 결국은 남한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합의의 효력을 전체 정지했습니다.

 

🛰 북한의 위성 발사

북한은 군사 합의를 위반하면서 도발을 일삼았고, 한국 정부는 북한이 도발을 반복할 시 군사 합의를 깨겠다고 경고했는데요. 2023년 11월 21일 북한이 정찰 위성을 발사한 일이 결국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이튿날인 22일 한국 정부는 군사 합의의 제1조 제3항의 효력을 정지하고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무인기와 정찰기를 띄워 대북 정찰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북한의 합의 파기

바로 다음 날인 11월 23일 북한은 합의 파기로 맞받았습니다. 북한은 자국이 정찰 위성을 발사한 건 9.19 합의와 무관하다고 항의하며, 남한이 근거 없이 합의의 효력을 정지했으므로 합의 파기의 책임을 진다고 비난했습니다. 아래는 북한 국방성의 성명입니다.

 

“지금 이 시각부터 우리 군대는 9·19 북남 군사 분야 합의서에 구속되지 않을 것이다. 군사적 긴장과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취하였던 군사적 조치들을 철회하고 군사분계선 지역에보다 강력한 무력과 신형 군사 장비들을 전진 배치할 것이다”

<조선중앙TV>이 보도한 북한 국방성 성명, 2023년 11월 23일

🚧 완충구역의 붕괴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선언한 북한은 이후에도 도발을 이어갔습니다. 올해 1월 5일에는 서해 일대에 해안포를 발사했는데요. 9.19 군사 합의에 따르면 해상 완충 구역으로 규정돼 포 사격이 금지된 해역이었습니다. 이에 한국군도 포 사격으로 맞대응하는 한편, 이쪽에서도 지상과 해상의 완충 구역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니 군사 합의는 올해 연초 이미 비공식적으로 정지된 셈입니다.

 

✍ 전체 효력 정지

그로부터 반년도 지나지 않아 지난 4일, 군사 합의가 공식적으로 효력 정지됐습니다. 국무회의가 군사 합의 전체를 효력 정지할 것을 의결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했는데요.

 

합의를 파기한 건 아니고 이후 다시 되돌릴 수 있다고는 하나, 현시점에선 남북에서 합의가 휴지 조각으로 전락한 상황입니다. 정부는 군사 합의에 따라 중단했던 군사 분계선 일대의 군사 활동을 복원하고, 무엇보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 오물 풍선

정부가 군사 합의를 공식 정지한 건 근래 이어진 여러 건의 북한 도발 때문인데요. 그 가운데서도 지난달 말엽부터 북한이 띄워 보낸 오물 풍선이 직접적인 발단이 됐습니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남측의 탈북민 단체가 띄우는 대북 전단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급기야는 보복 격으로 풍선에 오물을 실어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앞으로 한국 것들이 우리에게 살포하는 오물량의 몇십 배로 건당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일각에선 이러한 도발이 군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데요.

 

3월 15일 김정은 위원장이 참관한 공수부대 훈련에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최근 무리한 병력 동원으로 북한군 선박이 침몰해 약 90명의 군인이 사망하자 군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지속적인 도발을 감행한다는 것이죠.

🔊 대북 방송

이에 한국 정부는 9.19 군사 합의를 정지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결정에는 북한이 오물 풍선을 계속 보낼 시, 북한이 대북 전단만큼이나 질색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겠다는 속뜻이 담겨 있는데요.

 

한국이 4일 합의를 정지해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8일 다시금 오물 풍선을 띄워 올렸습니다. 이에 한국 정부는 경고한 대로 9일부터 대북 확성기를 설치하고 방송을 재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금으로선 강 대 강 대치가 계속 고조되는 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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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9.19 군사 합의 효력 정지를 두고는 정계 안팎으로 갑론을박이 이어집니다. 한편에서는 북한이 이미 파기한 합의에 얽매여서는 도발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없다고 옹호하고, 반대편에서는 한국이 절제된 대응으로 명분을 가져갔어야 한다고 비판합니다. 글쎄요. 강경한 대응으로 북한을 억지해야 할지, 아니면 합의를 토대로 긴장을 관리해야 할지는 해묵은 데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쉬운 문제였다면 애당초 논란이 되지도 않았겠죠.

 

다만, 지금의 상황이 생각보다 위험천만하다는 사실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북한은 미국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공격적으로 도발을 감행하는 습성을 보여 왔는데요. 지금처럼 남북이 강 대 강의 대치를 이어가는 상황에선, 북한의 도발이 끔찍한 불씨가 될지도 모릅니다. 설령 남북 모두가 전쟁을 원치 않는다 해도, 북한의 도발과 남한의 대응은 그 하나하나가 언제나 우발적인 전쟁을 터뜨릴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