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LETTER/국제 LETTER

엑스포 2030,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가 체질변환 프로젝트

by 칲 조 2024. 1. 2.
728x90
반응형

 

한 달여 전, 막바지까지 기대를 놓지 않았던 2030 엑스포 개최지 선정에서 부산이 탈락했습니다. 165표 중 29표를 얻는 데 그쳐 아까워하지도 못할 어정쩡한 상황입니다. 이후 국내에서는 부산이 왜 이렇게까지 참패했는지를 두고 여러모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그러면 사우디아라비아가 어떻게 119표의 압승을 거둘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석유자본 덕분이라는 비아냥만으로는 사우디가 최근 불러일으키는 변화의 바람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행보: 국제 이벤트의 중심지

사우디아라비아가 네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발 중인 산악 관광지 트로제나 (Trojena).  트로제나에서  2029 년 동계 아시안게임이 열릴 계획이다, Neom

 

최근 국제 사회에서 사우디의 존재감이 부쩍 커졌습니다. 이번에 따낸 엑스포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큰 행사인데, 사실 이마저도 사우디가 유치한 여러 국제 행사 중 하나입니다. 거액을 풀어서 행사를 끌어오고, 대회를 개최하고, 사람을 모으는 사우디에 전 세계의 이목이 모이고 있습니다.

 

🎪 2030 엑스포

결국은 사우디가 수도 리야드(Riyadh)2030년 세계박람회(world fair) 개최지로 만들어냈습니다. 5년마다 개최되는 세계박람회는 전 세계에 국가 경쟁력을 홍보할 수 있는 빛나는 기회입니다. 수백만, 수천만의 해외 방문객이 몰리고 수십조 원의 투자를 끌어올 수 있습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반년 동안 국제 사회의 주인공이 되는 자리입니다.

 

 

 

📆 빽빽한 캘린더

세계박람회만 해도 여간한 행사가 아닙니다. 사우디가 준비하는 행사가 이것 하나가 아닙니다. 2020년대부터 2030년대까지 사우디의 달력이 가득 찼습니다.

 

사우디는 2027년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관하는 아시안컵을 개최하고, 2034년 전 세계가 참여하는 월드컵의 개최지로도 사실상 확정됐습니다.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 2034년 하계 아시안게임 개최권도 사우디에 돌아갔습니다. 푹푹 찌는 중동의 사막 국가 사우디에서 스키, 스케이트 경기를 연다는 소식이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사우디는 내년부터 매해 E-스포츠 월드컵을 열겠다는 계획도 발표했습니다. 그간 세계적 규모의 E-스포츠 대회가 열려 왔습니다. 사우디가 개최하는 E-스포츠 월드컵의 상금이 역대 최대 규모라고 이야기됩니다.

 

👥 선수와 리그

사우디는 큰 행사 몇 개를 개최해서 반짝 이름을 알리고 말 생각이 아닙니다. 국제 스포츠의 주도권 자체를 노리는 듯합니다. 최근 호날두, 벤제마, 네이마르 등 세계 정상급 축구 선수를 자국 리그에 영입하는가 하면,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프로골프 대회 PGA 투어를 합병하기도 했습니다.


목표: 새로운 글로벌 핫플레이스

동아일보

 

“이번 (엑스포 개최) 승리는 사우디의 실질적 통치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야심 찬 계획 ‘비전 2030’의 화룡점정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비전 2030’으로 사우디를 석유 의존 경제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The win is the icing on the cake for de-facto ruler Crown Prince Mohammed bin Salman's ambitious Vision 2030 program, which aims to wean the country off its oil dependency."

 

 

 

세계적인 뉴스 통신사 로이터지()의 평가가 정확합니다. 세계박람회는 물론이고 국제 스포츠 대회와 선수 영입 모두 하나의 커다란 퍼즐 속 조각입니다. 이름하여 비전 2030(Vision 2030)’. 사우디는 중동 어딘가의 부유한 산유국에서 한 걸음 나아가, 문화, 관광, 경제, 교육, 기술을 아우르는 새로운 글로벌 중심지로서의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 사우디의 과거

사우디아라비아 하면 아마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산유국의 이미지가 먼저 생각날 겁니다.

 

자유롭지 못한 사회

사우디는 세계에 몇 남지 않은 절대군주제 국가 중 하나입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정치적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등이 보장되지 않는 국가입니다. 게다가 이슬람교의 규범이 사회를 지배하는 나라기도 합니다. 음주를 규제하고 여성에게 히잡을 강요하는 모습에서 그 보수성이 드러납니다.

 

기름으로 지탱하는 경제

이렇게 경직적이고 완고한 사회에선 국가 경제가 발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원유를 팔아서 살림살이를 마련했습니다. 사우디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석유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입니다. 석유를 팔아서 쌓은 부유함 덕택에 국민과 사회의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습니다.

 

⚠️️ 사우디의 현재

문제는 언제까지고 기름을 팔아서 나라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겁니다. 2010년대 들어 미국과 러시아의 원유 생산량이 늘면서 사우디 경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국제적으로 화석 연료를 줄이려는 에너지 전환이 화두가 된 만큼, 장기적으로도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는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우디의 미래

사우디도 이제 살길을 찾아야 하는 처지입니다. 2010년대 들어 지도자 자리에 앉은 빈 살만 왕세자의 최우선 고민이 바로 사우디의 미래였습니다. 그래서 내놓은 계획이 바로 비전 2030’입니다. 장차 사우디를 첨단 기술, 첨단 제조업 국가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국가 경제와 사회의 체질 자체를 바꾸려는 대대적인 프로젝트입니다.

 

🌅 21세기 기회의 땅:

비전 2030’은 미래도시 네옴 프로젝트, 그중에서도 직선 도시 '더 라인(The Line)'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건 거대 프로젝트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사우디는 글로벌 경제의 중심지가 되기 위해선 우선 사회 자체가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20세기 미국이 그러했듯, 21세기 기회의 땅으로 거듭나야만 사우디는 석유 없이도 부강한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 전방위적 개혁

그렇기에 사우디의 개혁은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개혁·개방의 바람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사우디를 글로벌 트렌드와 발맞추는 현대적 사회로 전환하는 게 목표입니다.

 

국내적으로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장려하는 정책이 대표적입니다. 그간 이슬람의 보수적 규범과 문화가 여성의 사회 활동을 가로막았으나, 해가 지날수록 자유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추세입니다.

 

대외적으로는 폐쇄적이었던 국가의 빗장을 활짝 열고 있습니다. 사우디는 2019년부터 순례가 아닌 목적의 관광객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관광 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사우디 당국의 의지가 뚜렷해, 상전벽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만큼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 국제 행사와 비전 2030’

사우디의 국가 개조 프로젝트가 2030년을 목표의 해로 삼는 만큼, 2030년에 개최할 엑스포의 의미가 각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엑스포를 비롯한 여러 국제 행사는 사우디가 대대적인 개혁의 결과를 전 세계에 자랑할 기회입니다. 이때 자국의 잠재력과 미래를 입증할 수 있다면, 향후 세계를 선도하는 중심국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가 성큼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성과: 사우디의 외교적 승리

이런 맥락을 알고 보면 사우디의 국제 행사 유치를 두고 그저 석유자본의 힘이라고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사우디가 행사를 따냈다는 건 그 자체로 성과로 평가될 만합니다. 사우디가 자국의 원대한 비전을 어느 정도는 세계에 설득한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 사우디의 뒷모습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는 하나, 사우디는 여전히 국제적인 기준과 시대적인 흐름에 미흡한 모습을 보입니다. 무엇보다 인권 측면에서 거센 비판을 마주하는데요. 2018년에는 왕실이 반정부 언론인을 암살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서방 국가의 싸늘한 시선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우디와 서방 국가의 긴장

시선이 곱지 않은 걸 넘어서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언론인 암살 건을 문제 삼아 공개적으로 "사우디 왕실을 (국제적인) 왕따로 만들겠다"는 발언을 내놓았고, 캐나다 역시 여성 인권 문제와 언론인 암살로 사우디와 갈등을 겪은 끝에 외교 관계를 단절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서야 서방 국가와 사우디의 관계가 다소간 누그러진 상황입니다.

 

스포츠 워싱

최근 국제 행사를 여럿 유치하려는 행보를 두고도 비슷한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군주제 국가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려고 스포츠 이벤트를 이용한다는, 일명 스포츠 워싱을 의심하는 지적이었는데요. 엑스포 유치전에 참여한 이탈리아의 로마 시장은 사우디가 엑스포를 개최한다면 암울하고 억압적이며 캄캄한행사가 되리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 사우디의 승리

사우디는 이런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순조롭게 행사를 유치했습니다. 석유자본으로 여러 국가를 설득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사우디의 승리를 오로지 돈으로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 각국이 일회적 투자라는 미끼에 홀릴 만큼 얄팍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사우디가 보여준 국가 비전이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사우디가 그 매력을 효과적으로 설득했다고 봐야 합니다.

 

🤝 외교적 노력

특히나 이번 엑스포 유치전에서 사우디의 외교 역량이 주목받았습니다. ‘석유자본보다는 석유자본을 잘 활용한 외교가 두드러졌습니다. 는 사우디가 그간 외교적 관계가 소원했던 나라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외교를 펼친 점을 고평가했습니다. 사우디는 카리브해 국가와 다자 정상회담을 여는가 하면, 저 먼 남미의 콜롬비아로부터 공개적인 엑스포 개최 지지를 얻어내기도 했습니다.


사우디의 거대 프로젝트는 이미 현실에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국제 행사 유치전에서 연달아 압승을 거두고 있는 것만 보아도, 중동의 돈 좀 만지는 산유국에서 국제 사회의 핵심 플레이어로 발돋움하는 사우디의 변화가 엿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으로선 이번 패배를 오래 곱씹어야 하는 처지입니다. 우선은 글로벌 경제의 큰손이자 유력 국가가 된 사우디와 관계를 맺는 것이 고민일 테고, 나아가서는 와신상담의 자세로 향후 한국의 국가 비전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그려낼지를 뼈저리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