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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LETTER/국제 LETTER

방장 사기맵, 세계 최대 산유국 미국의 셰일혁명

by 칲 조 202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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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석유가 고갈될지 모르니 아껴 써야 한다는 말 한 번쯤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런 얘기가 쏙 들어갔습니다. 그 배경엔 세계를 놀라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으니, 바로 미국의 셰일 혁명입니다. 50~60년이면 화석 연료가 고갈될 거라고 했는데, 갑자기 200년은 더 쓸 수 있는 화석연료가 미국 땅에서 뿜어져 나온 겁니다.

 

미국은 2010년대 초반 셰일 혁명에 힘입어 초강대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나아가 2018년 세계 최대의 원유 생산국이자 수출국이 됐습니다. 원유 수출에 국가 경제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던 산유국들엔 재앙에 가까운 타격을 준 미국의 셰일 혁명, 대체 언제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요?

 


미국, 셰일 혁명을 일으키다

 

🛢️ 셰일오일과 셰일가스

땅속 깊은 곳, 지하 수km 아래엔 셰일층이라는 암석층이 있습니다. 보통 일반적인 원유나 가스는 셰일층에서 형성된 뒤 지표면과 가까운 쪽으로 이동해 고입니다. 이걸 유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지표면으로 이동하지 못한 가스들은 셰일층에 그대로 갇혀 있게 됩니다. 이 갇혀 있는 원유와 가스를 셰일오일과 셰일가스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원유나 천연가스보다 훨씬 깊은 곳에 묻혀 있고, 미세한 틈새에 넓게 퍼져 있어 시추가 매우 어렵습니다. 타이트한 공간에 갇혀 있어 타이트 오일(tight oil)이라고도 부르고 있죠. 1800년대부터 이미 존재는 알려졌지만, 추출 기술이 부족해 그림의 떡 신세였습니다.

 

💡 셰일오일과 셰일가스, 뭐가 다른 거야?

셰일층에 갇혀있는 원유를 셰일오일, 가스를 셰일가스라고 합니다. 셰일오일은 일반 원유와 마찬가지로 연료와 석유제품 가공용으로 활용되며, 셰일가스는 천연가스와 같이 난방과 에너지 공급을 위해 활용됩니다. 시추 지역의 환경 등에 따라 셰일오일을 추출하는 곳도, 셰일가스를 추출하는 곳도 있습니다.

 

🏗️ 조지 미첼의 수압 파쇄법

그러다 등장한 게 조지 미첼의 수압 파쇄법입니다. 조지 미첼은 미국의 중소 석유 사업가였는데요. 미첼은 1980년대부터 1998년까지 약 2억5천 달러를 투자해 셰일가스 추출법을 연구했고, 1998년 마침내 수압 파쇄법이란 기술의 상용화에 성공합니다. 수압 파쇄법이란 물과 모래, 화학약품을 섞은 뒤 강력한 수압으로 셰일 암석에 쏴서 원유와 가스를 뽑아내는 기술이죠.

 
수압파쇄법과 수평 시추법 결합, 가스신문

🛠️ 데번 에너지의 수평 시추법

하지만 수압 파쇄법 만으론 쉽지 않았습니다. 셰일오일과 셰일가스는 셰일층을 따라 횡으로 넓게 퍼져있기에, 수직으로 뚫고 내려간 후 다시 수평으로 굴착해 들어가 추출해야 했는데요. 셰일 에너지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수평 굴착 기술이 필수적인데, 데번 에너지란 기업이 당시 수평 시추법의 선두 주자였습니다. 2002년 데번 에너지는 그간 눈여겨보던 조지 미첼의 회사를 인수하면서 수평 시추법과 수압 파쇄법을 결합했습니다. 이렇게 셰일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추출할 기술이 확립됐습니다.

 

💰 셰일, 그게 돈이 되나?

기술은 마련됐지만, 문제는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셰일오일의 손익분기점(BEP)은 배럴당 약 60~70달러 수준이었는데, 2007년까지만 해도 국제유가가 70달러 아래로 유지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08년 기점으로 국제유가가 폭등하며 셰일 채굴의 발판이 마련됩니다. 당시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원유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투기 수요가 폭발했는데요. 2007년 초 배럴당 50달러 후반이던 국제유가는 2008년 6월 무려 140달러까지 폭등합니다. 이후 2008 금융위기로 국제유가가 40달러 초반까지 폭락했지만, 미국의 빠른 경제 회복과 중동 정세의 불안으로 금세 국제유가 100달러의 시대가 다시 열립니다. 이때 지속적인 기술 개발로 생산 비용을 낮춘 미국의 셰일 업체들이 본격적인 채굴에 나서며 셰일 혁명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 사우디의 손익분기점은?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의 원유 채굴 비용은 배럴당 10달러 이하로, 미국의 셰일오일에 비하면 매우 낮은 편입니다. 하지만 이는 순수 원유 채굴 비용만 고려한 것으로, 사우디 자체가 원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임을 감안하면 손익분기점은 훨씬 높아집니다. 사우디가 균형 재정을 유지하기 위해선 국제유가가 최소 80달러 이상으로 유지돼야 합니다.

 


셰일 혁명이 굴린 스노우볼

 

🇺🇸 미국, 원유 생산 1위가 되다

2008년을 기점으로 시작된 셰일 채굴은 2011년 중동 민주화 물결을 계기로 본격화했습니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치솟은 유가는 2014년까지 100달러 이상으로 유지됐고, 미국의 셰일 혁명도 가속했습니다. 결국, 미국은 2018년 9월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45년 만에 전 세계 원유 생산량 1위를 기록합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원유만 하루 1,100만 배럴에 달했죠. 셰일 혁명 덕에 미국은 지금도 원유 생산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 도저히 넘볼 수 없어진다.

2010년대 셰일 혁명으로 미국의 힘은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군사력 1위, 경제력 1위에 에너지 생산 1위 자리까지 거머쥔 건데요. 2008 금융위기로 미국이 쇠락하리라던 예측도 단숨에 잠재웠습니다. 미국은 셰일 혁명으로 중동 문제에서도 손을 뗄 수 있었습니다. 그간 미국은 에너지 때문에 중동에서 상당한 국력을 소비해 왔습니다. 중동 정세가 불안정해지거나, 중동 국가들이 힘을 합쳐 원유 감산에 나서면 기름값이 폭등하고, 미국 내 물가가 치솟기 때문이죠. 하지만 하루아침에 미국 본토에서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1/7에 달하는 원유가 쏟아져 나오면서 미국은 더 이상 중동 분쟁에 힘을 허비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 치킨게임 나선 사우디

하지만 꽃길만 펼쳐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셰일 혁명으로 글로벌 원유 공급량이 순식간에 늘어나면서 2014년 원유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원유 가격이 내려가면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은 감산을 통해 가격을 끌어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사우디와 주요 산유국은 오히려 증산을 택했습니다. 자칫 생산량을 줄였다가 미국 셰일 업계에 점유율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사우디의 치킨게임에 국제유가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전까지 50~60달러 선에 머물렀고, 미국 셰일 업계는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미국의 셰일 업체는 인력을 대거 해고했고, 팬데믹 초기 유가 하락세가 가팔라지며 여럿이 파산하기도 했습니다. 공고했던 미국-사우디의 관계도 셰일 혁명을 기점으로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 무너져 내린 신흥국

셰일 혁명과 사우디의 치킨게임에 브라질과 러시아, 이란 등 주요 산유국들도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됩니다. 거침없이 질주하던 BRICS의 성장에도 제동이 걸렸습니다. 대부분의 산유국은 균형재정을 위해 유가가 70~100달러 수준으로 유지돼야 했는데, 저유가로 재정 적자가 이어졌습니다. 일례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13년 한 경제 콘퍼런스에서 "셰일은 야만적"이라며 소리를 질렀다고 하죠.

 

🔎 BRICS: 빠르게 성장하는 5개의 신흥국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묶어서 이르는 말

 


셰일 혁명은 아직 진행 중

 

🔥 셰일의 효과는 굉장했다

셰일 혁명은 그저 에너지 생산만 늘린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십분 강화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가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습니다.

 

📈 팬데믹 이후의 유가 상승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락했던 국제유가는 전 세계의 빠른 경제 회복과 산유국 모임 OPEC+의 감산에 급등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로 돈이 필요해진 사우디가 적극적인 감산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유가 상승을 계기로 미국 셰일 업계가 막대한 증산에 나서자 국제유가는 하락했고, 사우디의 감산 노력도 물거품으로 돌아갔죠. 생산량을 줄였는데도 유가가 하락하자 사우디를 제외한 산유국들은 아예 감산 결의를 무시해 버리기도 했습니다. 산유국 모임에서 사우디의 영향력이 제한되고 있는 겁니다.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도 미국 셰일가스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러시아는 LNG(액화천연가스)를 무기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유럽 국가들을 위협했는데요. 하지만 러시아의 LNG가 빠진 자리를 미국산 가스가 채우며 러시아의 영향력도 약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사우디는 왜 자꾸 감산하려 할까

중동 최대의 산유국인 사우디는 빈 살만 왕세자의 집권을 계기로 많은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600조 원이 투입되는 신도시인 '네옴시티'부터, 아시안게임, 월드컵, 엑스포까지 굵직한 세계 행사를 유치했습니다. 이를 감당하려면 유가가 높게 유지돼야만 합니다.

 

🏃 셰일 혁명은 계속된다

미국 셰일 업계는 2010년대 후반의 힘든 시기를 딛고 다시 도약 중입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국제유가가 폭락하자, 미국 셰일 업계도 고사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세계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고, 공급망 위기로 국제유가가 치솟으며 상황이 반전됐습니다. 미국 셰일 업계는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생산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이는 등 생산 효율화에 힘써왔는데, 유가가 폭등하며 노력이 빛을 본 거죠. 셰일 업계의 전망이 개선되면서 올해 10월 미국 '석유 공룡' 엑손 모빌이 미국 3위의 셰일 채굴 업체인 파이어니어 내추럴 리소시스를 약 80조 원에 인수했습니다. 12월에는 워런 버핏이 투자한 석유 업체 옥시덴탈이 셰일 업체 크라운락을 약 16조 원에 인수했습니다.

 

과연 지속 가능할까❓

하지만 장밋빛 미래만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2010년대 후반 저유가 시기 셰일 업계가 인력을 대거 해고하며 노동자가 부족해졌고, 이는 팬데믹을 겪으며 더 심해졌습니다. 자연스레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고 셰일 에너지 생산 비용도 커졌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환경 문제입니다. 셰일 에너지는 채굴할 때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합니다. 여기엔 미국의 핵심 수자원인 지하수가 활용되는데, 최근 늘어난 셰일오일 시추로 지하수가 말라간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미국은 물 소비의 90% 이상을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기에 셰일 시추가 미국의 '물 위험(water risk)'을 키우리란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또, 셰일 시추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에는 알레르기는 물론 암과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성분이 포함돼 있는데, 이들이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2010년대 본격화한 셰일 혁명은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대사건이자, 미국이란 나라가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게 해준 핵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전쟁,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미국의 셰일 혁명, 과연 미국은 셰일 채굴에 뒤따르는 여러 리스크를 극복해 내고 세계 최대의 원유 생산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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