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엔 홍콩 H지수 ELS가 개미 투자자를 여럿 울리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우량 국영 기업을 모아놓은 이 H지수가 하락하면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만든 주가연계증권(ELS)이 대규모 손실을 볼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하지만 이 H지수 ELS 사태는 단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실제로는 홍콩 증시 전체가 암울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습니다.
절벽에서 떨어진 홍콩 증시
H지수는 물론 항셍지수 같은 대표적인 증시 지수들이 크게 떨어지고 있고, 증시의 활기를 유지해 주던 IPO도 거의 없어진 상황입니다. 아시아의 1등 글로벌 금융 허브의 지위를 경쟁 도시에 빼앗길 판국에 이르렀죠.
📉 지수 급락
위는 항셍지수(HSI)를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홍콩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 중 가장 우량한 기업들의 시가총액 추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8년에는 32,000까지 올랐던 항셍지수가 지난 4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현재는 16,000대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올해만 해도 25% 하락하였습니다. 이와 대비하여 한국의 코스피와 일본의 닛케이는 10%에서 20%대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 말라붙은 IPO
또한, 홍콩 증시에 상장을 원하는 기업들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올해 홍콩 증시의 기업공개상장(IPO) 규모는 51억 달러로, 이는 최근 10년 평균의 16%에 불과하며, 3년 전에 비하면 10%도 되지 않습니다. 홍콩 증시엔 상장을 해도 투자를 끌어낼 수 없을 거라는 비관이 시장에 가득합니다.
😥 추월당한 홍콩
상황이 이러하니 아시아의 대표 금융 중심지라는 말도 무색해졌습니다. 지난달에는 홍콩 증시의 시가총액이 인도 증시에 추월당하였고, 세계 금융 경쟁력 평가에서는 작년에 싱가포르에 밀려 3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추락하는 홍콩, 어떻게 그 자리에 올라갔을까
홍콩이 글로벌 금융 허브로서의 위치를 잃어가는 현재, 그 배경을 이해하려면 홍콩이 어떻게 그 자리에 올라섰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홍콩이 20세기 후반부터 글로벌 금융 자본의 중심으로 떠오른 데는 그 지리적 위치, 발달한 인프라 등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홍콩이 '중국이지만, 동시에 중국이 아닌' 그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 영국령 홍콩
1842년부터 1997년까지, 즉 100년 이상에 걸쳐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은 중국이었지만 동시에 중국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의 언어, 교육, 정치, 경제 제도가 이식되었던 홍콩은 아시아 지역의 주요 국제 무역 항구로 발전하였습니다.
🛤️ 동서양의 접점
중국이 사회주의화 된 이후에도, 홍콩은 서구식 자본주의가 성행하는 지역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동양에 위치하고 있지만, 그 제도와 문화는 서구적인 홍콩은 국제 금융 자본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1960년대부터 아시아에 진출하려는 다국적 은행과 자본들이 홍콩에 진출하게 되었고, 이는 홍콩이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홍콩 특별행정구는 사회주의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지 아니하며, 원래의 자본주의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50년간 변동하지 아니한다.”
-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홍콩의 헌법) 제5조
📄 일국양제의 약속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그 독특한 위치와 제도를 유지한 것은 '일국양제'라는 원칙 덕분입니다. 이 원칙은 1980년대 중국이 홍콩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후, 영국과의 협상을 통해 홍콩은 자본주의 체제로 남는다는 일국양제(一國兩制)가 선언됐습니다. 이 덕에 홍콩은 중국에 반환된 후에도 그 독특한 성격을 유지하며, 글로벌 자본을 계속 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중국으로 향하는 관문
🚪 투자하려면 홍콩으로
반환된 후에도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지만, 그 독립성을 유지하였습니다. 1978년 중국의 개혁과 개방 이후, 중국은 연 10% 이상의 고도 성장을 이어가면서 전 세계의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때 중국에 투자하기 위한 통로로 홍콩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 중국의 특혜
중국 정부 역시 반환된 홍콩에 대해 다양한 특혜를 제공하였습니다. 1997년 반환 전후로 중국 본토 기업의 홍콩에서의 상장과 거래를 허용하였고, 또한 위안화 표시 채권 발행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에 투자하고자 하는 해외 투자자들이 홍콩에 몰려들었습니다.
📈 중국과 동반 성장
홍콩은 중국에 반환된 이후 중국 경제의 성장과 함께 발전하였습니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경제로 떠오르는 동안, 홍콩 역시 그 성장세를 함께 누리며, 2002년부터는 GDP 성장률 등 여러 경제 지표가 급격한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일국일제: 중국이 된 홍콩
홍콩은 중국과 가까운 듯 멀어 보이는 적당한 거리감을 지속하면서 자신의 매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요. 최근엔 그 독특한 위치를 잃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019년부터 홍콩이 눈에 띄게 중국으로 기울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그로 인해 글로벌 금융 중심지의 역할이 약화하고 있습니다.
☝️️ 금융 허브의 조건
세계 각국의 자본이 모이는 글로벌 금융 허브가 되려면 그에 맞는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정책적 안정성입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홍콩 증시에 투자하고, 다국적 은행들이 홍콩에 지점을 두기 위해서는 홍콩의 경제, 비즈니스, 투자에 관한 정책이 안정적이라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 50년의 약속
그런 면에서 홍콩이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영토라는 건 상당히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중국이 1980년대에 홍콩 주권을 되찾겠다고 선언했을 때, 홍콩에서 글로벌 자본이 빠져나가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국양제' 원칙 덕분에 50년 동안 중국과 별개로 운영되어 금융 허브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 중국화 된 홍콩
그러나 2019년부터 이 '일국양제'의 약속이 깨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중국 당국의 영향력이 홍콩에 점차 강화되면서 홍콩이 중국화 됐습니다. 글로벌 투자자는 도무지 중국의 경제 제도, 법률과 사법 시스템, 정치 체제를 믿지 못합니다. 일국양제의 홍콩에서는 사업을 하고 투자를 할 수 있지만, 중국화 된 홍콩에선 그러지 못하겠다는 분위기입니다.
🚨 홍콩 탈출, 헥시트: 실제로 글로벌 자본과 투자자가 홍콩에서 탈출하고 있습니다. 홍콩(Hongkong)과 탈출(Exit)을 합쳐 헥시트(Hexit)라고 부르는 현상입니다.
오랫동안 다국적 기업과 은행의 아시아 본부는 대체로 홍콩에 위치했는데요. 최근엔 홍콩을 떠나 싱가포르로 이동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홍콩에서는 서구권의 인력을 찾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미국, 호주, 영국, 캐나다, 프랑스 출신의 인력이 비자 승인을 받는 수가 급감하였고, 그 자리는 중국 본토 인력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중국과 함께 침몰하는 홍콩?!
홍콩은 이제 중국과의 거리감에서 나오는 매력을 잃었습니다. 이제는 중국과 더욱 가까워졌다는 데서라도 매력을 찾아보아야 하는데, 홍콩이 중국 경제에 올라타려 해도, 중국 경제 자체가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홍콩은 20세기와 2000년대처럼 중국 경제 성장의 덕을 볼 수가 없습니다.
🏢 홍콩 증시 상장 회사
홍콩 증시의 상장 기업 중 70%가 중국 기업인데, 이들 기업이 매력적이어야만 홍콩 증시가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 기업들의 심각한 악재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어 투자자들로서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 무너지는 부동산
중국의 부동산·건설 산업은 현재 큰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중국 내 대형 부동산 기업 중 상당수가 홍콩 증시에 상장되어 있는데, 중국 부동산 위기의 신호탄을 터뜨린 거대 부동산 기업 헝다 그룹, 뒤이어 디폴트 선언으로 대형 사고를 터뜨린 비구이위안 모두 홍콩 증시 상장 기업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홍콩 증시에 상장 폐지 위기에 직면한 부동산 기업들이 적지 않습니다.
최근엔 중국 당국이 부동산 경기 부양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상황이 진정되는 듯 보이는데요. 여전히 전망이 불확실해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 전반적인 경기 침체
부동산 기업에서 위기가 두드러질 뿐, 경기가 안 좋은 건 중국 전 산업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홍콩에 상장된 알리바바, 텐센트 등의 빅테크 기업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홍콩 증시를 확 되살릴 불씨가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 일대일로에 배팅?
이에 홍콩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투자를 확대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일대일로'와 같은 대규모 인프라 사업에 투자가 몰리는 만큼, 홍콩이 이를 중개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려는 전략입니다. 그러나 이 전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일대일로' 사업도 원활하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홍콩의 위기가 더욱 심화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홍콩이 맡고 있는 금융 허브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시아가 금융 시장과 투자처로서의 매력을 유지하는 한, 그 역할을 대체할 새로운 금융 중심지가 필요합니다. 지금으로선 싱가포르와 인도가 그 주요 후보로 거론되는데, 새로운 금융 중심지가 어디일지 돌아가는 상황을 잘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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