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일본의 한 경제지가 아주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를 냈습니다. 한국 경제는 이미 정점을 지났고 눈앞에 남은 건 내리막길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는데요.
한국 경제가 요즘 영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이렇게 다른 나라 언론의 목소리로 들으니 충격이 더욱 큽니다. 어려운 지금 시기를 넘기면 경기가 곧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단호히 부정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중국과 닮았다: ‘피크 코리아(Peak Korea)’론
"한국 언론에서 '피크 차이나'라는 말을 한다. 중국의 경제 발전이 이제 정점을 찍고 내림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다른 나라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韓国メディアでも「ピークチャイナ」という言葉が見ら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中国の経済発展がもはやピークを迎え、後は下り坂だ――というのです。しかし、よその国のことを心配している場合ではないのです。"
한마디로 사돈 남 말하지 말라는 일침입니다. 정말 중국이 정점을 찍고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면,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실제로 ‘피크 차이나(Peak China)’ 담론에서 거론되는 문제는 우리나라도 똑같이 겪는 문제입니다.
🏔️ 피크 = 정점
작년부터 ‘피크 차이나’론이 전 세계적 화두가 됐습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중국이 미국 경제를 따라잡는 건 당연하고, 미국을 제쳐서 한참이나 앞서가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최근 중국의 상황을 관찰한 전문가들이 중국의 잠재력이 고갈됐다는 분석을 내놓은 겁니다. 중국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어 정점이 곧 찾아오리라 내다봤습니다.
🇨🇳 피크 차이나의 증거는
지난 5월 영국 지는 피크 차이나론의 근거로 인구 감소와 노동 생산성의 부진을 꼽았습니다.
생산 가능 인구
중국에서 노동하는 인구는 이미 2014년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생산 가능 인구가 1,000만 명 이상 감소했고, 2030년대부터는 감소세가 더욱 가파를 전망입니다.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을 자처한 중국 경제가 성장세를 이어가기 어려운 건데요. 중국 당국도 이 문제를 모르지 않지만 인구 정책이 효과가 없는 상황입니다.
생산성
인구가 늘지 않는다면 노동력 등의 자원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생산성에서도 중국은 희망을 찾기 어렵습니다. 공산당의 권위주의 통치와 지정학적 갈등으로 자원의 효율적 사용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빠르게 향상되리라 기대됐던 생산성은 예상보다 더디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인구 감소로 노동력도 줄어들고, 투입할 수 있는 자본은 많지 않고, 생산성도 낮으므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人口減によって労働力も下がり、投入できる資本は大きくなく、そもそも生産性も低い韓国ですから、潜在成長率が下がるのは当然。"
🇰🇷 미끄럼틀 타는 한국
일본의 경제지는 한국 역시 비슷한 문제에 놓였다고 진단한 듯합니다. 인구 절벽으로 노동력이 감소하고 생산성 향상도 지지부진하다는 건데요. 아픈 곳을 찌르는 꽤 정확한 지적입니다.
인구 절벽
한국의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중국의 상황과 비슷하거나 심각한 상황입니다. 2040년까지 생산 가능 인구가 24%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으며, 세계 3대 신용 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도 한국은 인구 감소로 투자 부진과 재정 부족을 겪으리라고 내다봤습니다.
투자와 생산성
인구 전망만 암울한 게 아닙니다. 노동력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자본을 더 투입하고 생산성을 개선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자본 증가율과 생산성 증가율은 모두 둔화하고 있습니다. 생산성 증가율은 여전히 OECD 상위권에는 속해 있지만, 이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 떨어지는 성장률
노동, 자본, 생산성의 경제 발전의 삼박자가 모두 위태로워진 결과는 경제 성장률에서 드러납니다. 문제의 일본 경제지는 한국의 GDP 성장률이 1980년대의 8.88%에서 1990년대 7.3%, 2000년대 4.92%, 2010년대의 3.33%로 급감했다고 지적했습니다. 2020년대의 4년 평균 성장률은 1.90%였습니다.
"이러한 경제 성장률의 하락세를 보건대 한국 경제가 0%대로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この下げっぷりなので、『韓国経済』は「0% 台への墜落は時間の問題」としているのです。"
📑 OECD의 잠재 성장률
일본 경제지의 문장이 자극적이긴 하나,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노동, 자본, 자원을 최대한 투입했을 때 부작용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정도를 잠재 성장률이라 부르는데요. OECD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 성장률은 내년 1.7%까지 떨어질 전망입니다. 내년 경제가 1.7%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도 1.7%는 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일본과 닮았다: 한국이 잃어버릴 30년
‘피크 코리아’론은 한국의 구조적 여건을 지적하며 경제 성장이 고점에 다다랐다고 걱정하는데요. 그 고점 이후에 벌어질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1980년대 일본이 그랬듯, 한국이 비슷한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 일본의 거품 경제
1980년대 일본은 한마디로 빚투와 영끌의 경제였습니다. 금리는 낮고 대출 규제는 있으나 마나 한 상황에, 너도나도 대출을 내서 부동산과 주식을 사 모았는데요. 인구 고령화와 산업 재편의 부진으로 성장 동력이 식은 일본에서, 경제를 가까스로 지탱했던 건 가계 부채로 쌓은 투자였습니다.
📆 잃어버린 30년
부채로 지탱되는 경제, 다시 말해 거품 경제가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1989년 정책 금리가 오르자 투자자들은 부동산과 주식을 급하게 처분했고, 이에 따라 금융 시스템에 큰 타격을 입어 일본은 장기 침체에 빠졌습니다.
📊 빚만 갚는 경제
이 시기 일본의 디플레이션 상황을 대차대조표 불황(Balance-sheet recession)이라고 부릅니다. 대차대조표의 한편에는 자산이, 반대편에는 부채가 적히는데요.
버블이 터진 일본은 부채가 그대로인데 자산 가격이 폭락하는 상황을 마주합니다. 가계는 하는 수 없이 불어난 부채를 갚는 데 몰두했는데요.
빚을 갚느라 줄인 소비는 경제를 쪼그라들게 하고, 위축된 경제에서 자산 가격은 한층 더 내려갑니다. 자산 대비 부채의 부담은 더 커지는 셈이죠. 이처럼 빚을 갚다가 오히려 빚이 더 부담스러워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곧 대차대조표 불황입니다.
📰 이코노미스트의 경고
한국 경제의 거품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된 문제입니다. 작년 5월 지가 "한국 경제가 일본처럼 될 조짐이 보인다(South Korea’s economy threatens to become like Japan’s)"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습니다. 한국 경제의 여러 지표에서 1980년대 일본의 모습이 어른거린다는 내용입니다.
부동산 가치
거품 붕괴 직전 일본의 토지 가치는 GDP의 5.4배에 달했습니다. 한국의 토지 가치는 2013년 GDP 4배 수준에서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2022년 5.1배까지 상승했습니다. 최근 주택 시장 냉각으로 부동산 가치가 다소 떨어지긴 했어도 여전히 GDP나 소득 대비 높은 수준입니다.
부채 규모
한국의 가계 부채는 주택담보대출에 힘입어 GDP 대비 108%까지 치솟았습니다. IMF가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26개국 중 이렇게 빨리 부채가 늘어난 나라는 없었습니다. 절대적 규모로 봐도 26개국 중 두 번째로 가계 부채가 많습니다. 기업 부채도 마찬가지로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 한국의 미래는?
고금리 국면에서 가계와 기업의 생존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경제가 한순간에 대차대조표 불황의 악순환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일각에선 한국이 1980년대 일본보다는 안전하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이대로면 잃어버린 30년을 마주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점은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실이죠.
일본과 중국을 따라가지 않으려면
암울한 경제 전망이 줄 이어 흘러나오는 요즈음의 뉴스. 국민, 전문가, 정치인, 학자, 경제인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이대로면 안 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어려운 만큼, 난국을 타개할 해결책도 적극적으로 제안됩니다.
🏢 선도 기업 돼야
한국이 믿을 건 기술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선진국을 따라잡는 게 아니라, 이제는 선진국 대열에서 앞서나가야 하는 상황. 기업은 당장 눈앞의 사업보다도 시야를 멀리 둬야 합니다. 반도체를 대량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글이나 애플처럼 미래를 선도할 혁신 기술을 갖춘 기업이 나타나야 하죠. 결국 장기적인 R&D가 중요하다는 제언입니다.
🔑 정부의 역할
글로벌 산업을 선도할 기술을 갖추기 위해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지난 9월 재계의 전문가들이 정부에 ‘산업 대전환 제언’을 전달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기술 개발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요청했습니다. 정부가 재정을 출연해 첨단 기술 개발을 위한 전략적 연구를 지원하고, 첨단 산업의 인재 육성과 유치에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구조 개혁
그간 회피해 온 구조 개혁도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노동 개혁과 연금 개혁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부르는 사안인 만큼,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기를 머뭇거려 왔습니다. 국가의 장기적 지속을 위해선 방치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국가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을 모아 커다란 방향성만큼은 타협을 봐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현재 한국 경제는 결정적인 전환점에 놓여 있습니다. 인구 감소와 생산성의 부진, 그리고 부채 증가와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장기적인 불황이나 경제 위기를 경험할 수 있는 위험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사회가 내려야 할 결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잘못된 선택이나 무분별한 행동은 경제 위기를 앞당기거나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반면에, 적절한 정책과 구조 개혁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다시 성장의 궤도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정부는 적절한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해야 하며, 기업은 효율적인 경영과 혁신을 통해 경제 성장을 지속해야 합니다. 또한 시민들은 이러한 노력을 지지하고 참여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발전을 도모해야 합니다.
결국,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창출하는 데는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책임을 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 경제는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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