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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압박에 월급 파격 인상한 일본 기업들

by 칲 조 2024.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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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노사교섭인 춘투의 가늠자 역할을 하는 도요타자동차 노조가 7일 본사에서 단결을 호소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일본에서는 매년 3월에 임금 협상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이를 춘계 임금 투쟁, 줄여서 춘투라 부르는데요. 도요타, 미쓰비시 전기 등 일본의 주요 기업들이 올해 춘투에서 연이어 높은 임금 인상률을 발표했습니다. 투쟁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노조 요구보다 임금 인상액을 더 높게 부른 기업까지 나오기도 했는데요.

 

파격적인 임금 인상엔 일본 정부의 입김도 작용했는데요. 오늘은 올해 일본의 임금 인상과 그 배경, 향후 일본 경제 전망까지 자세히 다뤄봤습니다.


월급 파격 인상한 일본

💸 33년 만에 최고 임금 인상률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발표에 따르면 지난 315일까지 진행된 임금협상의 평균 임금 인상률이 5.28%에 달했습니다. 이는 작년보다 1.6%P 상승한 수치로 3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요.

 

특히 일본제철은 14.2%, 미쓰비시 전기는 6.32%, 혼다는 5.6%의 임금 인상을 결정하는 등 노동계가 목표로 삼은 인상률 5%를 넘긴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조합원 수가 300명 미만인 중소기업도 4.42%의 임금 인상률을 기록해 32년 만에 인상률이 가장 높았습니다.

 

작년 3.6%의 임금 인상률을 기록했지만, 물가가 그보다 더 가파르게 오르면서 실질 임금이 떨어졌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임금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을 충분히 상쇄해 실질 임금도 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 자동차 업계의 역대급 임금 인상

특히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자동차 업계가 올해 임금 인상을 이끌었습니다. 지난 21일 자동차와 부품 제조, 판매 회사의 노동조합인 자동차 총련이 올해 5.6%의 임금 인상률 주장하기로 사실상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전체 가맹노조의 17.7%에 해당하는 186개 노조에서 임금 인상이 타결됐고, 월평균 인상액은 작년보다 4,067엔 증가한 13,896엔을 기록했다고 덧붙였는데요. 이는 인플레이션이 심했던 1974(24,093) 이후 5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작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일본 최대 자동차 기업 도요타는 최대 28,440(253,000)의 월급 인상과 역대 최대 규모의 보너스 지급을 포함한 노조 요구를 전부 받아들였습니다. 또 다른 자동차 기업인 혼다, 닛산, 마쓰다의 임금 인상 폭도 사상 최고 수준이죠.

 

혼다는 노조의 요구(2만 엔)보다 높은 21,500엔 인상을 결정하면서 1990(6.2%) 이후 가장 높은 인상률(5.6%)을 기록했습니다. 닛산은 현행 임금 제도가 도입된 2005년 이후 최대치인 18,000(16만 원)의 월 급여 인상을 결정했습니다.

 

마쓰다도 노조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6.8%의 임금 인상률을 발표했습니다.

⛓️ 노조 요구보다 임금 더 올려준 일본제철

철강 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제철은 노조 요구(3만 엔)보다 높은 월 35,000엔 인상을 결정해 무려 14.2%의 임금 인상률을 기록했습니다. 노조가 요구한 3만 엔 역시 50년 만에 최대 수준으로 높은 인상액이었으나, 그보다 더 큰 금액을 기업이 제시한 것인데요.

 

아사히 신문은 인력난에 시달리는 일본 철강업계가 인재 확보를 위해 과감한 임금 인상에 나섰다고 지적했습니다. 히타치제작소와 파나소닉 홀딩스, 미쓰비시중공업, 가와사키중공업, 미쓰비시전기, NEC, 후지쓰도 노조의 요구대로 월 13,000엔에서 18,000엔 사이의 임금 인상을 수용했다고 밝혔습니다.


관제 춘투비판에도 밀어붙인 기시다 총리

😊 임금 올리는 기업에 세제 혜택

사실 기업이 나서서 임금을 대거 올려주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일본 정부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작년 6월 임금을 인상한 기업에 법인세 혜택을 주는 임금 인상 촉진 세제를 발표했는데요.

 

임금을 1.5% 이상 올린 기업은 올린 임금의 최대 40%만큼 법인세나 소득세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경우 임금 인상 금액, 대상 인원수에 비례해 최대 600만 엔의 업무개선지원금을 받을 수 있죠. 노골적인 개입이라는 비판까지 일었지만, 기시다 총리는 2024년 춘투가 일본 경제를 좌우한다고 밝히며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뉴시스

🏛아베에 이어 관제 춘투 시즌 2

왜 이렇게 일본 정부가 임금 인상에 진심인지를 알려면 최근 일본 경제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1990년대 자산 거품이 급격하게 꺼지면서 일본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졌습니다. 경기가 활력을 잃으면서 소비가 둔화했고, 물건이 안 팔리니 기업은 고용과 투자를 줄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올라야 할 물가는 되레 떨어졌습니다. 한마디로 물가가 하락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디플레이션악순환에 빠진 건데요.

 

아베는 이러한 일본의 장기 경기 침체에서 탈출하기 위해 아베노믹스라 불리는 대대적인 경제 정책을 펼쳤습니다. 특히 1997년 이후 제자리걸음이었던 일본의 임금 수준과 물가를 올리는 데 총력을 다했죠. 2%의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추는 등 대담한 통화정책을 이어갔습니다.

 

시중에 돈을 풀어 투자와 소비를 늘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정책이었는데요. 그러나 이미 얼어붙은 소비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2014년부터는 기업에 임금 인상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임금을 올려 강제로 소비를 늘리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나라가 춘투에 관여한다는 의미로 관제 춘투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이번 기시다 총리의 행보를 두고 관제 춘투 시즌 2라는 말이 나오죠.

 

💡일본의 장기 침체를 불러온 버블 붕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ttps://chief-cho.tistory.com/632

 

화려했던 일본 버블 경제 시절, 어떻게 시작됐을까

일본의 버블 경제는 무분별한 통화 공급으로 부동산과 주식 시장으로 자금이 비정상으로 몰렸던 1986년부터 1991년 사이를 의미합니다. 버블 경제가 붕괴한 후 1,500조 엔에 달하는 자산은 말 그대

chief-cho.tistory.com

 

📢 기시다 총리의 적극적 호소

실제로 기시다 총리는 재계에 임금 인상을 대놓고 요구하는 발언을 이어왔습니다. 작년 11월에는 코로나19 전 수준으로 실적이 회복한 기업의 경우 3% 이상의 임금 인상률을 기대한다고 밝혔는데요.

 

춘투를 앞둔 올해 1월에는 총리 관저에서 노사민정협의회를 열어 중소기업의 임금 인상이 가능하도록 대기업이 하청 업체와의 거래 단가를 올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최근 일본 증시 훈풍 속에서도 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언급했죠.

 

닛케이255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4만을 돌파한 지난 4일에는 정부의 경제 정책이 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런 움직임을 지속하기 위해선 구조적인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고도 말했습니다.

👛 소득 증가로 소비 촉진

아베와 마찬가지로 기시다 총리 역시 경제 성장을 위해 소비를 늘리려면 소득 증가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잃어버린 30'으로 표현되는 일본의 장기 침체를 깨려면 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 증가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설명이죠.

 

작년까지 일본의 주요 기업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실적 부진을 이유로 임금을 크게 올리지 않았는데요. 작년의 경우 8년 만에 2% 이하의 임금 인상률(1.86%)을 보였고, 실질임금은 전년 대비 2.5% 감소해 33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죠.

 

반대로 세계적인 물가 상승 추세에 엔화 가치 하락까지 겹치면서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42년 만에 최고 수준인 3.8%를 기록한 결과, 실질임금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이에 기시다 총리가 직접 총대를 메고 임금 상승을 압박한 거죠.


잃어버린 30탈출할 수 있을까?

💹 금리 인상에 결정적 역할

한편 이번 임금인상은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의 통화정책 정상화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지난 19일 우에다 총재는 2016년부터 -0.1%로 동결이었던 기준금리를 0~0.1%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우에다 총재는 작년 4월 취임과 동시에 물가 2% 목표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서, 마이너스 금리 체제를 종료하고 정책 전환의 핵심 조건으로 올해 노사 교섭의 결과를 주목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우에다 총재는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이 강해지면서 초완화정책이 역할을 다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예측한 일본의 금리 인상 시기는 빨라도 올해 4월이었는데, 이번 춘투에서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오면서 우에다 총재가 과감한 결정을 내린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옵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일본의 초완화정책과 우에다 체제가 불러올 변화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https://blog.naver.com/chief_cho/223302711303?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

 

우에다 가즈오 총재 취임, 일본 드디어 금리 올리나?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초 완화정책'...

blog.naver.com

 

📆 연내 추가 금리 인상 있을지도

임금 인상이 물가의 안정적인 상승으로 이어질 경우 버블 붕괴 이후 오랜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일본 경제가 살아나리란 기대감이 나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임금 인상으로 하반기 추가 금리 인상이 있을 것으로 내다봅니다. 8년 만의 마이너스 금리 종료에도 불구하고 실질금리는 여전히 크게 마이너스 수준이기 때문인데요. 경제학자들은 지난 2월 일본의 물가상승률이 2.9%였다는 점에서, 명목금리가 0.1%로 인상돼도 실질금리는 여전히 마이너스인 2.8%라고 추정했습니다.

 

BNP파리바의 코노 류타로 이코노미스트는 임금과 물가 선순환이 발생할 경우 2025년 말까지 1%대까지 금리가 오를 수 있다고 예측했는데요. 또 환율과 이번 춘투 결과가 4월 이후 물가에 어떻게 반영되는지에 따라 빠르면 오는 7월 두 번째 금리 인상이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 관건은 중소기업

근로자 전반의 소득 상승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조가 없는 기업의 임금 협상 결과가 중요합니다. 일본의 경우 전체 노동자의 약 20% 정도만이 노조에 가입한 상황인데요.

 

70%의 고용을 책임지는 중소기업 중에는 노조가 없는 곳도 많죠. 그러나 원자잿값 폭등으로 이미 큰 타격을 입은 중소기업이 인건비 상승을 견디기 어려우리란 우려도 나옵니다. 이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의 양극화 문제가 심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데요.

 

이에 기시다 총리는 지난 13일 노사 단체 대표들과 가진 회의에서 임금 인상이 부담되는 중소, 소규모 기업을 위해 인건비 상승분을 물품 거래가격에 반영시키는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이에 더해 기시다 내각은 최근 중소기업의 임금인상에 방해가 되는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하청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불공정 하도급 거래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습니다.


역대급 임금 인상과 더불어 2007년 이후 17년 만의 금리 인상 결정에 일본 내에서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집니다. 그러나 아직 기대하긴 섣부르다는 의견도 나오는데요.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에 나설 때마다 일본 경제가 크게 요동치며 디플레이션이 오히려 굳어졌다는 악평을 들었기 때문이죠. 우에다 총재는 임금 협상 결과에 따른 과감한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도 시장충격을 최대한 줄이겠다며 연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은 있지만 인상 폭이 크지 않을 것이고 국채 매입을 통한 양적완화 정책은 지속할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번엔 과연 일본이 오랜 경기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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