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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중국 견제 방법 디리스킹, 효과는 어떨까

by 칲 조 2024.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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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월드뉴스

 

미국과 중국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습니다. 험한 말을 주고받은 정도야 나중에 주워 담을지 모르겠으나, 서로의 돈줄을 건드린 일은 수습할 수가 없습니다. 돈줄은 나라의 목숨줄이고, 한 번 목숨줄을 노린 원수는 다시 신뢰할 수 없으니까요. 지금 와서 파트너로 돌아간다는 건, 호시탐탐 목덜미를 노리는 맹수 앞에 약점을 내보이는 일처럼 느껴지겠죠.

 

그렇다고 등을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양국 경제가 긴밀히 연결된 탓에 억지로 결별하다가는 감당 못 할 피해를 볼지 모르거든요. 화해할 수도, 의절할 수도 없는 난감한 관계입니다.

그 관계의 주도권을 어떻게든 잡아보려는 시도가 미국의 디리스킹인데요. 미국이 디리스킹을 천명하고 1년이 넘게 흘렀지만, 결과는 성공이라고도 실패라고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앞날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디리스킹: 좁은 마당과 높은 울타리

미국은 기필코 반도체에서만큼은 중국을 밀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대중 반도체 수출과 투자의 올가미를 점점 날카롭게 죄는데요. 미국이 이토록 적극적으로 나서는데도 디리스킹의 성과는 그리 밝지 못합니다.

 

💔 디리스킹의 의미

디커플링(Decoupling)이 중국과 전면적으로 갈라서겠다는 전략이라면, 디리스킹(De-risking)은 핵심적인 분야에서만 중국을 배제하겠다는 기조입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디리스킹을 택한 건 중국과 전방위적으로 경제 전쟁을 벌이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인데요. 동시에 첨단 기술과 핵심 공급망에 있어서는 경제 전쟁도 불사하리라고 다짐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SBS

🚫 미국의 확고한 의지

그렇게 필사적인 분야 가운데 하나가 반도체입니다. 반도체가 인공지능(AI)부터 시작해 군용 무기까지 폭넓게 쓰이는 만큼, 패권 경쟁의 핵심 전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미국의 의지가 얼마나 굳센지는 반도체 산업에 부과한 제재만 보아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미국 산업안보국(Bureau of Industry and Security)202210월 반도체 수출 통제를 결정했습니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장비와 고성능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는데요.

미국 산업안보국

 

1년 뒤인 202310월 수출 통제가 한결 강화됐습니다. 수출이 통제되는 반도체와 장비의 범위를 넓혔고, 이미 중국에 수출한 반도체 생산 장비를 유지·보수하는 활동도 제한했습니다.

 

그 두 달 전인 20238월엔 대중국 반도체 투자를 규제하기도 했습니다. 반도체와 장비 같은 현물만 아니라 자본이 중국 반도체 산업에 흘러가는 것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 디리스킹의 효과

미국이 수출을 통제하는 것만 보아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는 데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가 드러나는데요. 들인 노력만큼이나 효과가 있었을까요? 미국에서 가장 저명한 싱크탱크 CSIS(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가 지난달 미국의 반도체 기술 통제 정책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아래는 한 대목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에 맞선 기술 통제를 설명하기 위해 ‘좁은 마당, 높은 울타리’라는 표어를 내세웠다. 규제를 부과하는 기술 영역은 비교적 좁게 두되 규제의 강도는 매우 엄격하게 설정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기가 절대 만만치 않다."

 

"The Biden administration has embraced the term “small yard, high fence” to explain its technology controls affecting China—in other words, the universe of restricted technologies will be comparatively small, but the restrictions will be extremely stringent. But realizing this objective presents a formidable challenge."

 

- Sujai Shivakumar et al. “Balancing the Ledger: Export Controls on U.S. Chip Technology to China”

 

✌️ 두 가지 문제

좁은 마당과 높은 울타리. 미국의 디리스킹를 집약하는 구호입니다. 여러 영역 중에서도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술에서만 중국과 맞서고(좁은 마당), 적어도 좁은 마당에서만큼은 규제를 강력하게 부과하겠다는(높은 울타리) 계획인데요.

 

CSIS의 말마따나 실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1️⃣ 중국을 가두면서도 자국 산업을 제약하지 않는 마당의 크기를 정하기가 어렵고 2️⃣ 울타리를 높으면서도 구멍 없이 튼튼히 세우는 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디리스킹이 맞닥뜨린 문제를 하나씩 살펴볼까요?


마당에 갇힌 미국의 반도체 업계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따돌리는 게 목적입니다. 그러려면 중국의 발을 묶어놓는 동시에 자국 반도체 기업이 앞서나가도록 북돋아야 하는데요.

 

미국의 디리스킹이 두 일 모두를 해내기가 쉽지 않은 형편입니다. 중국을 확실히 막으려면 수출을 가능한 한 넓게 통제해야 하는데, 이러면 오히려 미국의 반도체 기업이 우는 소리를 내거든요.

 

🇨🇳 대국 중국의 시장

작년 중국의 반도체 시장 규모가 무려 1,800억 달러에 육박했습니다. 미국 정부로선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중국의 반도체 시장이 걱정스럽겠지만, 미국 기업으로선 반드시 매출을 올려야 하는 노다지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미국 주요 반도체 기업은 매출 상당 부분을 중국 시장에서 내곤 했습니다.

 

📉 수출 규제와 매출 하락

미국 정부가 반도체 수출을 통제한 뒤로는 미국 기업의 중국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는 추세입니다. 최근 화제에 오른 엔비디아(NVIDIA)만 해도 원래 전체 매출의 20% 가까이 중국에서 벌어들였는데요. 지난해 4분기 중국 매출의 비중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습니다.

 

🙏 반도체 기업의 안간힘

매출이 떨어질 동안 엔비디아가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닙니다. 규제 당국이 고성능 반도체 수출을 금지했으니, 반도체의 성능을 낮춰 중국에 판매하려 했는데요.

 

작년 10월 미정부가 규제 범위를 확대하면서 이 방법도 어려워졌습니다. 다시 성능을 조정해 규제를 피하려는 엔비디아와 그것도 규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정부 사이에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 차라리 국산 쓴다

규제 당국의 마음에 들 때까지 성능을 대폭 낮추면 되지 않냐고요? 중국 기업으로선 그렇게 저성능 반도체를 수입할 바엔 차라리 자국 기업 화웨이의 반도체를 사는 편이 낫습니다

 

엔비디아로선 정부의 수출 통제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불평할 만한 상황인데요. 그동안 엔비디아가 90% 이상을 장악한 중국 AI 반도체 시장을 현지 반도체 기업에 뺏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상당합니다.

 

💪 반도체 자립?

엔비디아의 AI 반도체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이 수출을 통제한 결과 중국의 2023년 반도체 수입액이 전년 대비 650억 달러만큼 줄어들었습니다. 수출 통제가 효과를 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같은 해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이 25%까지 올랐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중국의 현재 기술력으로는 당장 필요한 성능의 반도체를 모두 국산화할 수 없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미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고 중국의 자급률이 올라가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죠.

 

🔬 장기적인 피해

매출이 떨어져봤자 수익이 좀 적어지는 것 아닌가? 그렇게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반도체 업계는 경쟁이 극도로 치열하고, 그 각축전에서 치고 나가기 위해선 연구·개발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매출이 떨어진다는 건 곧 투자금이 부족해진다는 것, 잠재적인 성장력을 잃는다는 뜻과 같습니다. 이대로 미국의 반도체 업계가 중국 시장에서 내몰리고 매출을 잃는다면 결국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엔비디아를 비롯해 반도체 업계에서 규제 수준을 재고해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까닭입니다.

 

🤔 정부의 딜레마

미국 정부도 자국 기업의 고충을 모르지 않습니다. 제재를 저성능의 구형 반도체까지는 확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서 업계를 달래기도 했는데요.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통제를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중국이 고성능 반도체를 수입해 AI와 우주 산업에서 자국을 추격할 가능성을 떠올리면, 선뜻 통제 기준을 느슨히 풀기가 어렵겠죠.


높은 울타리에 뚫린 구멍

언뜻 미국의 수출 통제가 지나치게 엄격해서 문제인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요. 사실 수출 통제가 그렇게 튼튼한 것도 아닙니다. 최근 중국이 꽤 애를 먹는다는 징후가 보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중국이 미국의 통제를 이겨내고 반도체 산업을 빠르게 키우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죠. 중국을 완전히 봉쇄하기엔 디리스킹의 울타리에 허술한 구석이 적지 않습니다.

 

📰 전략 자산을 중국군에?

직전에 엔비디아가 저성능 반도체도 수출하지 못해 발을 구른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아이러니하지만 올해 연초 엔비디아의 첨단 고성능 AI 반도체가 중국군에 공급된 정황이 발견됐습니다.

 

당연히 엔비디아가 정식 수출한 물량은 아니었습니다. 추적이 어려운 경로를 통해 흘러갔으리라고 추측하는데요. 중국이 제3국 법인이나 페이퍼 컴퍼니, 밀수를 통해서 반도체를 우회 반입하는 기술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미국 당국이 이를 하나하나 잡아내기 어렵다고 알려졌죠.

 

👥 미국과 우호국

미국 혼자서 중국으로 향하는 수출을 틀어막을 수 없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미 미국의 요청을 받아 일본, 네덜란드 등이 대중 수출 규제에 참여하는데요.

 

그 참여국마저도 규제 강도가 미국만큼 강력하지 않습니다. 미국과 우호국이 세운 울타리 높이가 다르니 중국이 그 틈을 노리기도 하죠. 최근 미국 정가와 반도체 업계에서는 우리나라의 반도체 장비 수출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는 분위기입니다.

 

⚒️️ 장비도 충분하다

중국은 미국의 규제가 실행되기 전에 이미 반도체 장비를 한껏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확보한 장비와 설비만 해도 구형 반도체를 양산하기엔 차고 넘친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설령 최첨단 장비를 구하지 못하더라도 중국은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 꽤 고성능의 반도체를 양산할 수 있습니다. 작년 여름 화웨이의 5G 핸드폰에 들어간 SMIC 반도체의 성능이 예상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죠.

 

👀 방심할 수 없다.

CSIS는 기존의 수출 규제만으로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멈추지는 못하리라고 봅니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에 쏟아붓는 액수가 천문학적인 데다, 미국 규제의 허점이 중국에 기회가 되기 때문인데요. 반도체 디리스킹이 시작된 지 어언 2년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 성과와 승패가 결정되지 않은 셈입니다.

 

"미국과 그 동맹국이 마이크로 전자공학에서 중국의 역량을 상당히 늦출 수 있다는 생각은 가설이지 그 이상이 못 된다."

 

"Indeed, the notion that the United States and its allies can significantly slow Chinese capabilities in microelectronics is a hypothesis—nothing more…"

 

- Sujai Shivakumar et al., “Balancing the Ledger: Export Controls on U.S. Chip Technology to China”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경쟁이 격해질수록 한국의 상황은 더욱 고달파질지도 모릅니다. 미국이 한국에 규제 동참을 압박한다면 중국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데 타격이 있을 테고, 중국이 겨울을 견디고 반도체와 장비를 국산화하면 중국 시장에서 설 자리가 비좁아질지도 모릅니다.

 

특히나 미국과 유럽, 일본보다도 우리나라가 더욱 위험할 수 있는데요. 그들 국가는 독과점에 가까운 기술적 우위를 가졌기에 중국과의 격차가 한참 여유롭지만, 우리나라는 언제고 뒤를 따라 잡힐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디리스킹이 효과를 내는지, 중국의 대응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면밀히 지켜봐야 할 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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