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유럽 순방으로 보는 중국과 유럽의 관계

 

💡 3줄 요약

지난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프랑스와 세르비아, 헝가리를 순방했습니다.

 

프랑스에선 무역 마찰과 우크라이나 전쟁 건을 논의했으나 중국과 유럽의 접점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세르비아와 헝가리에선 일대일로 프로젝트 투자를 중심으로 끈끈한 유대를 재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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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부터 10일, 중국의 시진핑(习近平) 주석이 유럽을 순방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장을 만나고, 세르비아에선 알렉산다르 부치치(Aleksandar Vučić) 대통령, 헝가리에선 빅토르 오르반(Orbán Viktor) 총리와 회담을 가졌는데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 알렉산다르 부치치 대통령 / 빅토르 오르반 총리

 

이름도 어려운 남의 나라 정상들의 만남, 우리가 왜 궁금해야 하는 걸까요? 지금과 같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정세에서 중국과 유럽은 세계를 움직일 만한 핵심적인 주연이기 때문입니다. 시진핑 주석의 순방을 유심히 들여다봄으로써 중국과 유럽이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지켜볼 이유가 있는 거죠.

 

이때 나름 배경지식이 필요합니다. 회담 이후의 공식 발언만 듣는다고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무얼 말했는지는 물론이고 무얼 말하지 않았는지도, 무얼 기대하고 무엇에 실망했는지, 순방 이전엔 어떤 일이 있었고 이후엔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아울러 봐야 합니다. 오늘은 시진핑 주석의 순방이 그려내는 그림의 전모를 조망해 보겠습니다.

 

중국: 유럽도 우리를 좋아한다

어떤 순방과 정상 회담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시진핑 주석의 순방은 꽤 우호적인 분위기로 치러졌습니다. 시진핑 주석을 상대한 유럽의 정상은 대화에 적극적이었고, 앞으로 관계를 건설적으로 가꿔보자는 이야기도 오갔는데요.

 

잠깐 멈춰서 생각해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최근 중국과 유럽은 사이가 그렇게 험악했는데, 시진핑 주석은 하하호호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갔다고요?

 

👏 중국의 자화자찬

“시진핑의 생산적인 유럽 방문이 [중국과 유럽의] 관계에 새로운 추동력을 불어넣었다.” 중국의 영자 관영지 글로벌타임스가 게시한 기사 제목입니다.

 

글로벌타임스는 유럽이 시진핑 주석을 열렬히 반겼고 이번 계기로 중국과 유럽이 협력을 크게 증진하리라고 순방 성과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 기사만 읽으면, 중국과 유럽이 절친한 파트너가 되자며 손을 잡는 웅장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질 정도인데요.

🎉 열렬한 환영

기사의 이야기가 순전히 거짓말은 아닌 게, 실제로 시진핑 주석은 뜨거운 환영을 받았습니다. 세르비아와 헝가리는 전투기를 띄워 시진핑 주석의 전용기를 호위했고, 세르비아 대통령과 헝가리 총리가 버선발로 뛰어나오다시피 정성스럽게 영접했습니다.

 

회담에서도 “세르비아의 가장 진실한 친구”(세르비아 부치치 대통령)라느니 “새로이 다극화된 세계 질서에서 기둥 같은 국가”(헝가리 오르반 대통령)라느니 하는 공치사를 들었죠.

🏔️ 피레네에 초대

프랑스에서도 마크롱 대통령이 성의를 보였습니다. 이튿날 피레네 산 중턱의 산골 마을에 시진핑 주석을 초대했는데요. 이 마을은 마크롱 대통령의 유년 시절 추억이 남은 내밀한 장소로, 해외 정상이 초청된 건 처음입니다. 마크롱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속을 터놓고 대화하기 위해 나름 애써서 자리를 준비한 셈이죠.

🤔 정말로 친해졌다고?

이런 모습을 두고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이 유럽 국가와 우애를 다질 만큼이나 매력적인 국가라고 자찬합니다. 정상들은 중국과 유럽이 협력해야만 서로에게 득이 되리라는 데 뜻을 모았다는데요. 글쎄요. 유럽의 핵심 국가 프랑스가 중국과 이야기를 나눠보려는 것도 사실이고 세르비아와 헝가리에서 끈끈한 협력을 논한 것도 사실이지만, 정말 유럽이 그만큼이나 중국과 가까워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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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유럽연합: 이 문제는 짚어야만 한다

왜 하필이면 지금 시진핑 주석이 유럽을 찾았을까요? 그리고 어째서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을 맞아들였을까요? 이런 질문을 던져야만 웃는 표정 뒤에 흐르는 딱딱한 분위기를 눈치챌 수 있습니다. 유럽과 중국 사이엔 민감한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나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나 문제를 해결하길 바랐겠지만, 고작 며칠의 순방으로 풀기에는 문제가 까다롭게 얽혔습니다.

 

📦 무역 마찰

중국과 유럽은 일촉즉발의 무역 갈등을 앞두고 있습니다. EU는 작년 10월 중국의 전기자동차 기업을 대상으로 징벌적 관세 부과를 염두에 둔 조사를 개시했습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중국 정부가 전기자동차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해 인위적으로 수출 가격을 낮췄고, 그렇게 중국산 전기자동차가 유럽연합에 쏟아지면서 유럽 자동차 산업이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했죠. 중국은 그에 반발하면서 (결코 보복은 아니라고 합니다만) 프랑스산 브랜디를 향해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 피하고 싶은 충돌

유럽의 전기차 조사나 중국의 브랜디 조사나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르면 올여름에 전기차 조사가 마무리될 텐데요. 이대로 유럽이 중국 전기차에 징벌적 관세를 매기고, 중국이 보복 관세를 들고나오면 둘 모두 심각한 손해를 피할 수 없습니다.

 

양측 모두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위기감에 휩싸인 지금, 시진핑 주석이 유럽을 찾고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EU의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대화에 나선 겁니다.

 

🎙️ 실속 없는 결과

하지만 중국, 프랑스, EU의 삼자 정상 회담에 별다른 소득은 없어 보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무역 마찰에 관해 차차 이야기해 보자고 의지를 보였다고는 하나 중국의 생산이 과잉이라거나 수출이 불공정하다는 지적은 부인했습니다.

 

이에 외신은 시진핑 주석이 무역 문제에서 양보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부동산 침체로 내수가 어려운 탓에 수출량을 조절하고 양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 위험은 그대로

이번 회담에선 문제의 심각성을 상호 인정하고 향후 논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딱 그 정도의 의의가 남았습니다. 프랑스 편에 선 중국이 조사를 마칠 때까지는 코냑(프랑스산 브랜디)에 징벌 관세를 때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정도죠.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회담 이후 아래와 같이 말했는데요.

"유럽은 유럽의 시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데 망설이지 않을 겁니다.
Europe will not waver from making tough decisions needed to protect its market."

 

중국과의 협의가 잘 풀리지 않으면 징벌 관세도 주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겁니다. 앞으로 양측이 타협점에 이르지 못한다면 무역 갈등이 크게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겠습니다.

 

🇺🇦 중국을 설득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이번 회담의 중요한 의제로 올랐습니다. 유럽은 러시아를 막고 우크라이나를 지키느라 몸살을 앓는데요. 중국은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지만 알게 모르게 러시아를 돕고 있습니다.

 

러시아산 가스를 수입해서 전쟁 자금을 충당하고, 나아가 군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중 용도 물자를 러시아에 수출하는 식으로요. 즉, 중국은 러시아가 전쟁을 이어가도록 뒷받침하는 조력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가 전쟁을 끝내도록 압박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 마크롱의 설득

마크롱 대통령은 회담 전부터 중국이 더는 러시아를 돕지 않도록 의견을 피력하겠다고 자신했습니다. 실제로 회담에서나 이후 기자회견에서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여러 번 강조했는데요. 마크롱 대통령의 노력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됩니다. 아래는 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시진핑 주석의 발언입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위기를 초래하지도 않았고, 위기의 당사자나 참여자도 아닙니다. … 동시에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용해 제3국을 희생양 삼거나 중상모략하는 것 또는 신냉전을 부추기는 것에 반대합니다.

China did not start the Ukraine crisis, nor is it a party to or a participant in it. … At the same time, China opposes attempts to use the Ukraine crisis to scapegoat or smear a third country or to stoke a new Cold War.”

 

거칠게 풀어보자면, 자신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을 들먹이면서 책임을 묻지 말라는 뜻입니다. 러시아의 전쟁을 돕는다는 주장 자체를 일축한 거죠.

 

🧨 예고된 갈등?

중국은 미국에 함께 대항할 러시아가 전쟁으로 인해 약화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유럽이 손 떼라고 한들 순순히 물러설 생각이 없는데요. 반대로 유럽의 입장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이 안보와 직결되는 실존적 문제입니다.

 

자신은 관련 없다는 중국의 말만 듣고 넘어갈 사안이 아닙니다. 최근 미국이 대러 무역을 지원하는 중국 은행을 제재하겠다고 나섰는데요. 중국과 접점을 찾지 못한다면, 유럽도 미국의 방법을 따르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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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와 헝가리 : 중국을 편드는 유럽의 반골

프랑스에선 분위기가 굳었다 해도, 세르비아와 헝가리와는 정말 우애를 다지지 않았느냐고요?

맞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세르비아의 부치치 대통령과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와 웃으면서 협력을 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질문은 남습니다. 유럽이 중국을 밀어내는 지금 어째서 세르비아와 헝가리는 시진핑 주석을 열렬히 반가워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시진핑 주석은 왜 프랑스 일정을 마치고 세르비아와 헝가리를 향한 걸까요?

 

🤝 관계 격상

시진핑 주석의 세르비아, 헝가리 일정은 화기애애했습니다. 프랑스에서처럼 갈등하는 문제를 두고 씨름하기보다, 적극적으로 협력을 모색하는 분위기였는데요.

 

그 결과 이번 계기로 중국은 세르비아, 헝가리와 각각 관계를 격상했습니다. 세르비아와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헝가리와는 이름도 거창한 ‘신시대 전천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었죠.

 

🌍 유럽의 별종

중국이 세르비아, 헝가리와 친밀할 수 있는 건 두 나라가 여느 유럽 나라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유민주주의가 보편적인 유럽에서도 세르비아와 헝가리는 권위주의 정치가 두드러지는 나라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일당 독재와 시진핑 주석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비교적 덜 낯설어하거나 덜 꺼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더군다나 두 나라는 다른 유럽에 비해 러시아에 우호적인 데다 미국과 서유럽, 즉 대서양 중심의 질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 생산 기지 헝가리

두 나라는 중국과 공통점을 공유하기에 협력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두 나라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쏟아붓는데요.

 

인프라 투자는 물론이고, 작년 12월엔 중국 전기차 기업 BYD가 유럽 최초의 생산 단지를 헝가리에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EU는 중국의 전기차를 막겠다며 관세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와중에, 헝가리는 중국의 전기차가 관세를 피해서 EU에 진입할 뒷문을 열어준 겁니다.

🇷🇸 대만과 세르비아

세르비아는 시진핑 주석을 맞아 “코소보는 세르비아, 대만은 중국”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습니다. 코소보는 세르비아에서 분리 독립한 국가이며 여전히 세르비아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지역입니다. 마치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보는 듯한데요.

 

중국과 세르비아가 공생 관계를 맺은 게 바로 이 지점입니다. 중국은 세르비아의 편을 들어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세르비아는 중국의 편을 들어 대만을 인정하지 않는 거죠. 나아가 두 나라는 코소보와 대만의 독립을 인정한 서방 국가에 칼을 갈고 있습니다.

 

👣 시진핑의 행선지

즉, 헝가리와 세르비아는 진정으로 시진핑 주석을 반길 만한 국가입니다. 또는 시진핑 주석이 자신을 반길 만한 국가를 찾았다고도 말할 수 있겠죠. 더 나아가면 세르비아와 헝가리 말고는 손을 잡을 만한 유럽 국가가 보이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유럽 순방에서 노골적인 친중 국가이자 유럽의 주류와 동떨어진 국가를 만나고 온 모습에서 중국의 대유럽 외교의 폭이 좁아진 현실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 5년 전과 달라졌다

이번 유럽 순방을 2019년의 순방과 비교하면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프랑스를 방문한 건 동일하지만, 5년 전엔 세르비아와 헝가리가 아니라 이탈리아를 향했습니다.

 

당시는 동유럽과 남유럽, 특히나 이탈리아까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중국이 유럽에서도 매력적인 파트너로 비친 시기였는데요.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유럽의 디리스킹 전략이 대두되면서,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남유럽과 동유럽의 여러 나라가 중국에 등을 돌렸습니다.

이탈리아가 6일(현지시간) 중국의 일대일로 협약에서 공식 탈퇴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3일 세르비아를 방문해 베오그라드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2023.12.07

👀 달라진 전략

이제 중국은 전체로서의 유럽을 설득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상황에 맞게 전략이 바뀌어야 하는 때인데요. 중국이 과거엔 유럽의 핵심 국가를 상대했다면 지금은 EU의 입장과 공공연하게 엇나가는 반골 국가에 힘을 쏟습니다. 반골 국가의 협조를 지렛대로 삼아 유럽에 균열을 심고 자국을 압박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자는 계산입니다.

 

세르비아야 아직 EU 회원국이 아니라고 하나, 정회원국 헝가리는 이미 중국의 기대에 부응하는 행보를 밟습니다. EU가 공동으로 중국을 비난하는 성명을 내거나 공격적인 정책을 채택하는 걸 가로막은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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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주석의 순방은 유럽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했습니다. 프랑스와 EU는 중국이 무역이든 대(對)러시아 외교든 양보하지 않으리라는 낌새를 알아챘고, 이대로면 갈등과 마찰을 감수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순방이 실패했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애초에 정상 회담 한 번으로 문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하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다만 유럽과 사이가 심각하게 틀어질 위험을 방지하는 한편, 유럽 내부에 자국의 목소리를 전달할 우호 국가를 세우는 게 현실적인 목표였을 겁니다. 그런 제한적인 목표에서라면 시진핑 주석의 순방은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도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