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하마스, 휴전 협상 진행 중

 

💡 3줄 요약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마지막 거점 라파를 향한 대규모 지상 공격을 앞두고 있는데요.

 

미국과 국제 사회는 팔레스타인 피난민의 피해를 우려해 라파 작전을 강력하게 만류합니다.

 

현재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협상이 이뤄지고 있으나 그 결과를 점치기는 쉽지 않습니다.

---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기어코 반년을 흘러왔습니다. 그동안 가자 지구 Gaza Strip에선 수만 명이 죽고 십수만 명이 다쳤으며, 백만 명이 굶주림을 안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가자 지구 밖에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제5차 중동 전쟁을 이야기할 만큼이나 정세가 험악해졌고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착잡하고 걱정스러운 심정으로 전쟁의 끝을 가늠하게 됩니다.

 

이쯤이면 전쟁을 끝낼 때도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셨다면 당장 들려오는 속보에 집중해야겠습니다. 바로 지금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휴전을 협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이집트는 중재역을 맡아 동분서주 뛰어다니고 국제 사회는 협상 결과를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는 이 긴장되는 순간. 오늘은 휴전에 얽히고설킨 국제 정세를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대규모 공격과 휴전 사이에서

가자 지구는 공포와 희망이 뒤섞인 긴장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대로 이스라엘군이 라파Rafah 지상전을 개시한다면 수많은 피난민이 죽거나 다치는 지옥이 열릴 테고, 다른 한편으론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극적으로 휴전을 타결한다면 적어도 몇 주의 여유, 나아가 보다 긴 평화를 이야기할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대규모 작전의 공포냐 아니면 휴전의 희망이냐, 가자 지구는 살 떨리는 갈림길에 섰습니다.

가자 지구의 전황을 나타낸 지도 . 이스라엘은 북부의 가자 시티와 남부의 칸유니스를 허물었고 ( 파란색 ),  최남단의 라파에서 지상전을 앞두고 있다 ( 빨간색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User:Ecrusized

 

---

마지막 거점이자 마지막 피난처, 라파

🏰 마지막 거점

작년 10월 이래로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의 북부와 중부를 무너뜨렸습니다. 가자의 제1 도시인 가자시티(Gaza City)와 제2의 도시 칸유니스(Khan Yunis)를 무력화했고, 그 과정에서 하마스의 24개 대대 중 18개 대대를 해체했습니다.

 

이제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의 거점이라 할 만한 곳은 최남단의 라파가 유일합니다. 이집트와 국경을 면한 도시, 라파엔 하마스의 4개 대대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 공격 목표

이스라엘은 지난 2월 라파를 새로운 목표로 지목했습니다. 라파에 폭격과 공습을 퍼붓는 동시에, 대규모 지상군 투입을 준비하기 시작했는데요. 3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스라엘군의 라파 작전 계획을 승인했고, 4월 말 이스라엘 참모총장이 남부 사령부의 전투 계획을 통과시켰습니다. 현재 라파 인근에서 이스라엘의 지상군 병력이 공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마지막 피난처

사실 라파는 하마스의 마지막 거점인 동시에 팔레스타인 주민의 마지막 피난처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시티와 칸유니스에서 하마스를 축출했다는 건, 다시 말해 두 도시가 사람이 살 수 없을 만큼 처참히 무너졌다는 뜻입니다. 팔레스타인 주민은 살아남기 위해 가자 지구 남쪽을 향했고 현재 140만 명이 라파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군이 대규모 공격을 계획하는 바로 그곳에 가자 지구 인구의 절반 이상이 있습니다.

---

기대되는 휴전 협상

💬 휴전 협상

이스라엘군의 지상전이 개시되면 라파에서 막대한 민간인 피해가 발생할 게 분명합니다. 파국을 막아볼 마지막 희망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입니다.

 

작년 11월 나흘간 휴전이 성사된 이후로 양측의 협상은 지지부진했습니다. 서로의 요구 조건이 평행선을 달렸기 때문인데요. 하마스는 이스라엘 인질을 석방하는 대가로 영구 휴전을 원했고, 이스라엘은 6주간의 일시 휴전이 최대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 타협의 가능성

라파 작전이 임박해서야 지난달부터 협상이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양측이 조건을 누그러뜨리고 점차 타협점에 가까워지는 모습인데요. 하마스는 일시 휴전부터 시작해 영구 휴전까지 이르는 단계적 종전을 제안하고, 이스라엘은 영구 휴전은 몰라도 보다 장기적인 휴전을 타진하겠다고 입장을 열어놓았습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나름 의욕적인 자세도 희망적인 조짐입니다. 현재 이집트 카이로에서 협상이 진행 중이라 결과는 지켜봐야겠습니다.

윌리엄 번스 CIA 국장과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

미국: 이스라엘과 거리 두기

미국은 과연 휴전이 성사될 수 있을지 조마조마 애가 타는 마음입니다. 이달 1일에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이스라엘을 찾아 휴전안을 받으라 촉구하고, 이틀 뒤에는 CIA의 윌리엄 번스 국장이 협상을 중재하기 위해 카이로를 향했는데요. 백악관이 나서서 이스라엘의 공격을 말리고 하마스를 압박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든 양측을 달래서 라파의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다급함이 엿보입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 공개적인 반대

미국이 이만큼이나 단호하게 이스라엘을 만류한 적은 드물었습니다. 물밑에서 이스라엘 지도부에게 조용히 뜻을 전할 뿐만 아니라 공개적인 채널을 통해서도 반대 의사를 거듭거듭 밝힙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작전에 반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가 하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존 커비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미국의 반대 의사를 이스라엘에 분명하게 전달했다고 발표했죠. 미국은 라파에 밀집한 민간인을 대피시키고 보호할 방법 없이는 결코 작전을 수행해선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 불타는 여론

미국이 이렇게까지 펄쩍 뛰는 데는 최근 들끓는 여론의 영향이 컸습니다. 당장 미국 대학가에서 반전 시위가 번져 2,000명 이상의 학생이 체포됐고, 여론조사에선 이스라엘과 이를 지원하는 바이든 정부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나날이 커지는 추세입니다.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에 즉각 휴전을 압박해야 한다는 여론이 떠오르는데요. 대선을 6개월 앞둔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유권자가 이스라엘 전쟁에 내린 평가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 국제적인 비판

국제적으로도 미국이 더는 이스라엘을 두둔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가까운 서방 세계에서도 비판과 휴전 요구가 고조되는 데다가, 다국적 기구에서도 라파 공격은 안 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UN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라파 공격이 민간인 학살로 이어지리라는 강력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그리고 수차례나 밝힌 바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라파 지상전을 강행해 인명 피해를 내고, 그걸 미국이 수수방관하거나 지원한다면 국제적인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UN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

👀 돌아선 미국

미국도 여론의 변화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니, 최근엔 이스라엘과 거리를 두는 모습입니다. 지난 3월 UN 안전보장이사회가 즉각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게 대표적인데요. 즉각 휴전 결의안은 작년 10월과 12월에도 상정됐으나, 미국이 번번이 거부권을 행사해 부결시킨 바 있습니다. 이번엔 미국이 거부권을 포기하고 기권 표를 던졌다는 데서, 더 이상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을 지지하지 못하겠다는 의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이스라엘: 정치적 생존을 위한 전쟁?

미국과 국제 사회가 필사적으로 말리는 데다 휴전 협상도 진척이 있다고 하니, 이스라엘도 웬만하면 휴전을 택하고 라파 작전을 백지화하지 않을까요? 글쎄요. 낙관적으로 기대하기엔 이스라엘의 태도가 사뭇 강경합니다.

 

🇺🇸 미국의 압박

물론 이스라엘과 그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가 미국의 압박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간 미국과 이스라엘은 전쟁 수행 방식을 두고 여러 번 각을 세웠는데요. 바이든 대통령은 답답해진 나머지 네타냐후 총리를 보다 노골적이고 거칠게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3월에는 네타냐후 총리의 맞수이자 중도 정당 대표인 베니 간츠를 백악관에 초대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를 말리는데도 말려지지 않으니, 네타냐후 정권 자체를 흔들 수도 있다는 협박의 메시지를 던진 셈입니다.

중도 정당 대표인 베니 간츠

🔜 그래도 간다

이스라엘도 나름 미국의 입장을 반영하는 제스쳐를 취합니다. 미국이 라파 공격에서 민간인 보호를 촉구했으니, 나름대로 민간인 대피 계획을 세워 미국을 설득하려 나서기도 했죠. 미국은 이스라엘의 대피 계획에도 불구 민간인이 여전히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라파 작전 자체를 포기하지는 못하나 봅니다. 최근 네타냐후 총리는 "(휴전 협상이) 타결되든 무산되든 우리는 라파에 들어가 하마스 부대를 모두 없앨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네타냐후의 정치적 위기

이스라엘은 라파에 남은 하마스 잔당을 소탕하지 않으면 안보 위협이 되풀이되리라고 이유를 설명하는데요. 사실 네타냐후 총리가 라파 작전을 포기할 수 없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네타냐후 총리는 정치적 생명이 끝날지도 모르는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전쟁이 터지기 전부터도 지지가 꺾이는 상황이었는데, 전쟁 이후에는 안보 무능과 전쟁 장기화의 책임론이 겹치면서 지지율이 더욱 고꾸라졌습니다.

극우의 인질

그 결과 이스라엘에선 네타냐후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습니다. 지지율이 바닥을 치는 네타냐후가 총리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선 극우 정당의 연립을 유지해야 하는데요. 극우 정당은 하마스와 휴전하거나 라파 공격을 머뭇거릴 시 연립을 깨겠다는 협박으로 총리를 압박합니다. 네타냐후 총리로선 극우의 압박을 섣불리 물리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

라파를 무너뜨린 후에는?

정말 이스라엘이 국제 사회의 우려를 무릅쓰고 라파를 공격한다면요? 라파는 결국 무너질 겁니다.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은 물론이고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수도 없이 죽고 다치겠지만, 어쨌든 라파의 하마스 거점은 제거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뿌리 뽑고 안전해질 수 있는 걸까요?

 

🤕 무너진 하마스

그동안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상당히 약화한 건 사실입니다. 하마스의 최고 지휘부를 사살했고 조직을 무너뜨렸으며, 가자 지구에 축적된 인프라와 땅굴을 제거했습니다. 작년 10월 7일 기습을 감행했던 당시의 전력에 비하면 하마스는 거의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죠. 이스라엘이 라파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면, 당분간 하마스의 기습을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겁니다.

🧩 근본적 문제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언젠가 작전을 마치고 가자 지구를 떠나야 합니다. 언제까지고 점령군으로서 전쟁을 이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군이 떠난 가자 지구를 생각해 봅시다.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에겐 무엇이 남을까요?

 

수없이 민간인을 죽인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가 남을 거고,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은 옳았다는 사후적인 정당화가 남을 겁니다. 가자 지구는 더욱 강력하게 하마스를 지지할 테고, 하마스는 그 속에서 암약하며 다시 이스라엘을 공격할 기회를 엿보겠죠.

 

👑 새로운 정부

요컨대 이스라엘이 라파를 함락시키는 걸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군사 작전 이후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마스를 대신해 가자 지구를 수습하고 주민의 생활을 보장할 대안적인 정부가 없는 한,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는 끊임없이 자라나고 테러를 기도할 겁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축출하는 걸 넘어, 하마스를 쫓아낸 자리에 팔레스타인 주민의 지지를 받는 튼튼한 카운터파트를 확립할 방편을 찾아야 합니다.

 

👤 PA라는 대안

유력한 후보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입니다. PA는 원래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 모두를 통치하였으나, 하마스에 밀려 가자 지구의 통치력을 상실했는데요. 미국은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군사 작전을 마친 후엔 PA가 가자 지구에서 통치를 확립하도록 돕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네타냐후의 극우 정권은 하마스를 PA로 대체하는 것조차 반대하고 있어, 근시안적인 소탕에만 매몰돼 장기적인 평화 구축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왼쪽)과 무스타파 총리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그 뿌리가 수십 년 전까지 뻗어 있을 만큼 깊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이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팔레스타인을 무장 해제한다고 해결될 문제였다면, 애당초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은 가능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원론적이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극우로 치닫는 이스라엘 정권, 그런 이스라엘에 칼을 가는 아랍 민족이 그 답을 찾아 나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