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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LETTER/국제 LETTER

미국과 일본, 동맹에서 글로벌 파트너로

by 칲 조 2024.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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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과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회담을 치렀습니다. 미국과 일본이야 워낙 긴밀하고 두 정상이 만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니, ‘또 만났구나하며 흘려 봤을지도 모르는데요.

 

양국 정상의 만남은 놀랄 일이 아니라도, 이번 만남에서 오고 간 이야기는 제법 놀랄 만합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국제 사회가 미·일 정상회담의 의미를 곱씹고 여파를 가늠할 정도니까요.

 

이번 회담은 미·일 동맹이 질적으로 발전한 역사적 사건이라 평가되기도 하는데요. 무엇이 그렇게 바뀌었길래 역사적이라는 거창한 말을 운운하는 걸까요? 변화는 변화 이전의 모습을 알아야 적절히 이해할 수 있는 법. 오늘은 시선을 한 발짝 더 멀리 두어보려고 합니다. 2024년의 회담을 이해하기 위해서 십수 년을 거슬러 올라가 보려는 거죠.


2013년의 아베 신조: “일본이 돌아왔다

올해 2024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다면, 11년 전 2013년엔 전전의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미국을 찾았습니다. 아베 총리는 방미 일정 가운데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에서 연설에 나섰는데요.

 

그 제목은 이름하여 일본이 돌아왔다” (Japan is Back). 이 의미심장한 제목의 연설을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이어지는 일본의 대미() 정책과 안보 정책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2010년대의 일본

아베 신조가 총리로서 미국을 찾은 2013, 일본은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1990년대 버블이 터지면서 장기 불황에서 허우적거렸고, 국제적으로는 중국이 급부상하며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쪼그라들었습니다.

 

20세기 후반 명실상부 초강대국으로서 세계 질서를 선도하는 일본의 모습은 이미 떠나버리고,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 일등 국가, 이등 국가

중국이 일본을 제쳐 세계 두 번째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고, 호시탐탐 대륙에서 해양으로 진출할 기회를 노리는 상황. 당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였고, 일본으로선 중국의 부상이 실존적인 문제로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대로 중국이 떠오른다면 일본은 동아시아와 세계 질서에서 영향력 없는 이등 국가(tier-two nation)로 전락하리라는 위기감이 감돌았죠.

 

🗣일본은 돌아왔다

바로 그런 시기, 아베 총리가 미국에서 정책 관계자와 전문가를 앞에 두고 이렇게 단호히 말한 겁니다.

“일본은 이등 국가가 아니고, 이등 국가가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전하려는 핵심적인 메시지입니다. 거듭 말하건대, 제가[총리로] 돌아왔고, 일본도 돌아왔습니다.

Japan is not, and will never be, a Tier-two country. That is the core message I am here to make. And I should repeat it by saying, I am back, and so shall Japan be.”

 

일본은 이대로 굴러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야심을 무력하게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목소리 내고 행동하는 강대국 일본이 돌아왔다, 이런 내용의 결의를 드러낸 건데요.

 

아베 총리는 중국으로부터 지금의 세계 질서를 지키기 위해, 다시 말해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일본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 미국의 강력한 동맹

일본이 어떻게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걸까요? 아베 총리는 일본의 국력, 다시 말해 군사력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일본과 미국이 함께, 세계에 더 많은 법치,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안전과 더 적은 가난을 보장하기 위해선 일본이 강해야만 합니다.

In order for us, Japan and the United States, to jointly provide the region and the world with more rule of law, more democracy, more security and less poverty, Japan must stay strong.”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국 일본은 헌법에 전쟁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적어 넣었습니다. 전력을 최소화하되 미국과의 동맹으로 안보를 보장받는 길을 걸어왔는데요.

 

아베 정권은 그간의 원칙을 깨고 일본이 군사 대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다시 말해 미국에 의해 보호받는 동맹이 아니라 미국과 함께 중국에 맞서는 강력한 동맹이 되겠다고 천명한 겁니다.


2024년의 기시다 후미오: “일본은 바뀌었다

2013년 아베 총리가 포부와 계획을 밝힌 지 10년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일본은 국방의 대원칙부터 방위비 규모까지 안보 정책의 큰 틀을 바꿔놓았습니다.

 

2024년의 기시다 총리는 아베 총리의 공약을 실현한 결과물을 들고 양국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미국을 찾았죠. 일본은 미국의 동맹으로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국가로 거듭났고, 미국은 일본의 변화에 호응해 동맹 관계를 한층 강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시다의 연설

2013년의 아베 총리는 일본이 바뀌겠다고 말했다면, 2024년의 기시다 총리는 일본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방미 일정 중 미국 상·하원 의원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기시다 총리는 아래와 같이 자평했습니다. 요컨대 일본은 미국이 중국, 러시아, 북한을 억지할 때 실질적으로 손 보탤 만큼 역량을 갖췄다는 뜻인데요.

“지난 수년간 일본은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복구하는 데 열중하는 소극적인 동맹에서, 세계를 내다보는 강력하고 헌신적인 동맹국으로 거듭났습니다.

Japan has changed over the years. We have transformed ourselves from a reticent ally, recovering from the devastation of World War II, to a strong, committed ally, looking outward to the world.”

-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

보통 국가 일본

실제로 일본의 안보 정책은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간 일본 정부는 전쟁을 금하는 헌법을 재해석하고 안보 관련 문서를 개정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는데요.

 

전후 일본은 공격받았을 때만 대응하겠다는 입장(전수방위)을 고수해 왔으나, 이제는 동맹에 대한 공격도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며, 방어를 위해서 상대국을 먼저 공격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나아갔습니다. 느슨해진 원칙대로라면 일본은 영토와 영해를 넘어 사실상 세계 어디에서도 전쟁을 치를 수 있습니다.

📈 방위비 증액

일본의 안보 개념이 변화함에 따라 실제 군사력도 빠르게 발전하는 추세입니다. 2021GDP0.95% 규모였던 방위비는 작년 1.19%까지 증가했습니다. 전쟁하지 않겠다는 일본으로선 GDP 1%를 암묵적인 마지노선으로 이해해 왔는데요.

 

기시다 정부는 그 선을 깨고 2027년까지 GDP2%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증액된 방위비는 미사일 등의 공격 무기를 구입하고 개발하는 데 쓰인다고 하죠.

🇺🇸 만족한 미국

이러한 일본의 변화는 미국이 오랫동안 바라왔던 바입니다. 일본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핵심적인 동맹국입니다. 과거엔 소련을 견제하고, 지금은 중국을 막아설 방어선인데요.

 

미국 입장에서 일본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데 정작 일본은 군사력을 확보하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고, 그런 까닭에 20세기부터 꾸준하게 일본의 재무장을 요구해 왔습니다. 결국 2020년대에 들어서야 미국이 흡족할 수준까지 일본의 안보 정책이 전환된 셈입니다.

 

👥 ·일 정상회담

결국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 10년간 일본 정부가 추진한 정책을 결산하는 자리였습니다. 양국 정상은 일본이 함께 싸우는 동맹국이 되겠다는 의지가 확인됐다고 인정한 셈이죠.

 

회담 이후 공동성명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일본이 방위 능력을 근본적으로 증진하기 위해 취하는 조치를 환영한다고 평가했고, 기시다 총리는 일본이 자국의 방위 능력과 역할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려는 확고한 약속을 재확인한다라고 다짐했습니다.

“양국의 집합적인 역량을 강화하는 용감한 조치를, 양국이 각각 그리고 함께 취하는 역사적인 순간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수년 전만 해도 불가능해 보였던 일입니다.

We arrived at this historic moment because our nations, individually and together, took courageous steps to strengthen our collective capacity in ways that would have seemed impossible just a few years ago.”

United States-Japan Joint Leaders’ Statement

동맹의 역사적 변화

요컨대 2010년대 일본 정부가 노선을 변경한 끝에, ·일 동맹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했습니다. 과거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일본을 보호하는 관계였다면, 이제는 양국이 모두 군사력을 갖춘 대등한 동맹이 되었으니까요. 동맹의 성격이 바뀌면, 그 활동도 바뀌기 마련입니다.

 

공동성명이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평가하듯, 양국 정상은 유례없는 정도의 안보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상호 운용성 제고, 방산 협력, 미국의 기술·물자 지원 등의 계획이 발표됐죠.


미국과 일본: 동맹에서 글로벌 파트너로

·일 동맹의 변화는 아시아의 지정학적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걸로 보입니다. ·일 양국은 양자 동맹을 강화할 뿐 아니라, 향후 대전략에서 능동적인 파트너로 협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요. 미국이 아시아에서 소다자 협력체를 구축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에서 일본은 가장 핵심적인 퍼즐로 떠올랐습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 ( 좌 ),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 ( 중 ),  일본의 기시다 총리 ( 우 ) 가 지난  11 일 삼자 정상회담을 가졌다 .

🇵🇭 삼국 정상회담

미국과 일본의 정상회담 다음 날, 양국 정상에 필리핀 대통령까지 더해 삼국의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필리핀은 남중국해에서 스프래틀리 군도를 두고 중국과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데요. 마찬가지로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분쟁을 겪는 일본, 중국과 패권을 다투는 미국이 안보 협력을 증진하기로 결의했습니다.

🇯🇵 감초 같은 일본

필리핀뿐만 아닙니다. 미국·일본·호주는 미사일 방어 네트워크를 함께 꾸리기로 했고, 미국·일본·영국은 합동 군사훈련을 정기적으로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이참에 오커스(AUKUS), 즉 미국과 호주, 영국의 안보 협력체에 일본이 부분 참여하는 방안도 타진됩니다. 일본은 이미 미국, 인도, 호주와 함께하는 안보 대화체 쿼드(Quad)에도 속해 있죠.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작년에는 한··일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안보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 일본과 소다자주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우방국이 차례로 엮이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유럽과 북아메리카를 아우르는 대서양엔 NATO(북대서양 조약 기구)라는 다자 안보 기구가 있는데요. 반면 아시아에서는 미국의 우방국 및 동맹국이 유기적인 연결 없이 퍼져 있습니다.

 

이러한 산발적인 양자 동맹으로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우방국 간의 네트워크, 즉 소다자 협력체를 만드는 데 착수했는데요. 이때 미국의 구상에서 일본이 핵심적인 역할을 자임해 맡았습니다.

 

🥼 포괄적인 협력

이제 일본은 미국의 대중국 전략 구상에서 빠질 수 없는 지위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는 비단 군사·안보적인 차원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대 군사력은 경제적·산업적 기반과 첨단 기술 수준으로 결정됩니다.

 

양국이 안보를 함께하려면 경제와 기술에서도 함께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정상회담에서 우주, 반도체, AI, 녹색산업 등 폭넓은 분야가 언급됐듯, 향후 양국의 경제적, 기술적 협력이 심화할 걸로 보입니다.


기시다 총리는 미국에서 일본으로 돌아오자마자 며칠 지나지 않아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과 나눈 이야기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하는데요. 미국과 일본이 남아시아에선 인도, 동남아시아에선 필리핀을 끌어들이려 한다면, 동북아시아에선 미국의 오랜 동맹 한국이 주목을 받는 게 당연합니다.

 

이미 일각에서는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한국을 향한 압박이 강해지리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한편에는 미국과 일본, 다른 한편에는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언젠가는 어려운 결정을 강요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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