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LETTER/경제 LETTER

중국 찾아간 재무부 장관 재닛 옐런, 과잉생산 지적

by 칲 조 2024. 4. 28.
728x90
반응형

 

지난 4일부터 9, 미국의 재무부 장관 재닛 옐런(Janet Yellen)이 중국을 찾았습니다. 중국의 국무원 총리와 부총리, 우리나라 기획재정부 장관 격의 재정부장, 한국은행 총재 격의 인민은행장 등 여러 굵직한 인사를 만났는데요. 미국과 중국의 사이가 틀어진 마당에 미국의 경제 수장이 직접 걸음을 한 일입니다. 당면한 사안이 그만큼이나 첨예하고 심각하리라고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옐런이 풀어야 했던 최우선 문제는 중국의 과잉 생산입니다. 얼핏 들으면 그 심각성이 와닿지 않습니다. 중국의 생산량이 많은 게 어째서 문제고, 그렇다손 쳐도 왜 미국이 나서서 왈가왈부하는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과잉 생산은 당장 미국의 핵심 산업을 뒤흔들 쓰나미일지 모르기 때문이죠. 이 문제가 어떻게 풀리는지에 따라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터질 수도, 나아가서는 신()산업의 패권이 결정될 수도 있습니다.


과잉 생산이 문제라고?

“이제 중국은 너무나 거대한 까닭에 세계의 여타 국가가 중국의 막대한 생산 능력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중국의 행보는 세계 시장의 가격을 움직입니다. 중국의 인위적으로 값싼 생산품이 세계 시장에 넘쳐흐르게 된다면, 미국과 여러 나라의 기업이 살아남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China is now simply too large for the rest of the world to absorb this enormous capacity. Actions taken by the PRC today can shift world prices. And when the global market is flooded by artificially cheap Chinese products, the viability of American and other foreign firms is put into question.”

- 재닛 옐런, 베이징 기자 회견, 2024년 4월 8일

 

기자 회견에서 옐런이 문제의 요점을 짚었습니다. 세 가지 포인트가 드러나는데요. 첫째 중국의 생산 능력이 과도하다는 점. 둘째, 그로 인해 세계 시장의 가격이 요동친다는 점. 셋째, 이러다가는 다른 나라의 생산자가 휩쓸려 무너질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 수요를 초과하면

옐런이 특히 문제 삼는 건 중국의 녹색 산업(green industry)입니다. 근 몇 년간 중국에서 태양광 패널, 전기 자동차, 리튬 이온 배터리 생산량이 천장을 뚫고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중국의 생산량이 지나치게 많아 중국 내수는 물론이고 세계 시장이 소화할 규모를 넘어섰다고 따집니다. 생산량, 생산 능력, 생산 설비가 시장의 수요를 넘어서는 상황, 즉 과잉 생산(overcapacity)이 일어났다는 이야기죠.

8일 중국 방문 일정을 마친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중국 '녹색 에너지 수출품'에 대한 관세 부과 가능성을 언급했다

📉 가격이 내려가고

과잉 생산으로 수요보다 더 많은 공급량이 풀리면, 당연히 상품을 제값 받고 팔기가 어렵습니다. 공장은 돌려야 하고 재고는 팔아야 하니 헐값으로도 팔아치울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게 한 생산자가 가격을 내리기 시작하면, 다른 생산자도 하는 수 없이 가격 경쟁을 따라가게 됩니다. 이렇게 생산자 사이에서 출혈 경쟁이 붙으면 산업 전반의 수익률이 떨어지는 결말을 맞습니다.

중국 장쑤성 동부 쑤저우항 국제컨테이너터미널에 수출 대기 중인 비야디(BYD) 전기차들이 쌓여 있다.

🤦 업계는 무너진다

출혈 경쟁은 패자가 나가떨어질 때까지 이어집니다. 옐런이 중국까지 날아온 게 바로 이 문제 때문입니다. 중국이 이대로 저렴한 수출품을 세계 시장에 쏟아내면, 다른 나라의 생산자는 터무니없는 염가에 밀려 고꾸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으로선 자국 기업이 하릴없이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중국의 수출을 말려 세워야 하는 처지입니다.


과잉 생산의 배경: 중국 제조 2025

과잉 생산은 중국으로서도 제 살을 깎는 일입니다. 생산품을 염가로 덤핑하면 마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실제로 작년 중국에선 과잉 생산이 생산품 가격을 끌어내린 탓에, 산업 수익이 2.3%나 하락했다는 보고가 나왔습니다. 자연스레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중국 기업은 왜 감당 못 할 만큼이나 생산 설비를 늘린 걸까요?

📦 수출 주도 성장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수출을 동력 삼아 경제를 살찌웠습니다. 저렴한 노동력 덕분에 제조업을 육성하기에 유리했고, 2001WTO 가입 이후 급격히 확대된 수출로 GDP를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지위가 얼마나 경제에 유익한지를 잘 알고 있는데요.

 

📑 중국 제조 2025

제조업이 유익한 건 맞지만, 제조업에도 우열이 있기 마련입니다. 의류나 신발 같은 소비재를 수출해서는 경제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중국은 고도성장을 이어가기 위해 제조업을 보다 높은 단계로 업그레이드해야 해야 했죠. 그리하여 중국 정부는 2015중국 제조 2025’를 발표합니다. 자국의 제조업을 첨단 산업의 방향으로 전환해 세계 시장의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습니다.

💰 정부의 인센티브

첨단 제조업을 키우겠다는 목표 아래서 중국 정부는 막대한 투자를 쏟아부었습니다. 저리의 정책 금융,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자금 지원, 세제 감면 등 직접적인 보조금이 대규모로 제공됐는데요.

 

중국 기업으로선 정부가 돈까지 찔러주며 부추기니 생산 설비를 늘리지 않는 게 이상한 일입니다. 다른 나라 기업이라면 회사의 미래를 걸고 공장을 지을지 말지 고심할 때, 중국 기업은 비용 걱정 없이 공장을 마구 지으며 박리다매에 나설 수 있었던 겁니다.

 

👏 인위적인 생산

다시 말해, 중국 녹색 산업의 생산 설비와 생산량은 시장의 수요·공급의 법칙을 따라 늘어난 게 아닙니다. 정부가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적극적인 산업 정책을 써서 인위적으로 떠받친 생산량입니다.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생산 설비를 늘려놓았으니 배터리,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의 상품이 중국 내수 수요를 훌쩍 넘겨 생산된 건 당연한 일입니다. 중국 기업으로선 국내에서 팔지 못한 재고는 어떻게든 털어야 하기에 국경을 넘어 전 세계에 수출량을 쏟아내고, 중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수출을 장려하죠.


과잉 생산의 파급: 2차 차이나 쇼크

중국의 과잉 생산과 떨이 수출은 다른 나라에 심대한 위협입니다. 미국은 특히나 녹색 산업에서 과잉 생산이 일어났다는 게 곤혹스럽습니다. 미국도 녹색 산업에 국운을 걸고 적극적으로 자국의 제조업을 키우는 상황이거든요. 지금 과잉 생산된 중국산 떨이가 쏟아지면, 애지중지 키워온 산업 기반이 무너질 게 분명합니다.

국민일보

💣 차이나 쇼크

미국은 중국 저가 수출품의 위험성을 몸소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은 2001WTO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에 진입했는데요. 저렴한 노동력으로 생산된 값싼 중국산 제품은 순식간에 선진국 시장을 점령했습니다. 특히나 노동 집약적인 경공업 산업에서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졌죠.

 

10년 정도 시간이 흐르자, 선진국의 저부가가치 제조업은 중국에 밀려 완전히 무너져버렸고, 그 여파로 미국은 무려 200만 개의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일명 차이나 쇼크(China Shock)’의 폭발력입니다.

 

“10여 년 전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으로 원가도 안 되는 가격의 중국산 철강이 세계 시장에 풀렸고 전 세계와 미국의 업계는 큰 피해를 보아야 했습니다. 분명히 밝히는데, 저와 바이든 대통령은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도록 두고 보지 않을 겁니다.

Over a decade ago, massive PRC government support led to below-cost Chinese steel that flooded the global market and decimated industries across the world and in the United States. I’ve made clear that President Biden and I will not accept that reality again.”

- 재닛 옐런, 베이징 기자 회견, 2024년 4월 8일

 

🌊 더 커진 쓰나미

차이나 쇼크는 미국의 깊은 트라우마고, 옐런이 비장하게 중국을 방문한 까닭입니다. 옐런과 미국 정부는 10년 전, 20년 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작심했습니다. 더구나 지금 우려되는 제2의 차이나 쇼크는 더욱더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과거 차이나 쇼크의 쓰나미가 소비재나 철강 등 저부가가치 제조업에 들이닥쳤다면, 2020년대 중국의 수출 공세는 첨단 제조업까지 밀어닥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 쓰나미 앞의 미래

옐런이 과잉 생산을 꼬집으며 언급한 산업을 떠올려볼까요? 태양광 패널, 전기 자동차, 리튬 이온 배터리. 셋 모두 향후 세계 경제를 이끌 고부가가치 산업이고, 동시에 바이든 행정부가 역점을 두고 육성하려는 부문입니다.

 

2022년 제정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만 해도 미국 본토와 인근 국가에 전기 자동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 제조업을 불러들이기 위해 막대한 규모의 보조금을 제공하는 내용입니다.

😱 미국의 공포

그렇게 큰돈 들여 키우는 산업이 차이나 쇼크를 맞기라도 하면, 상황은 절망적일 겁니다. 2000년대의 차이나 쇼크는 수많은 실업자를 낳았고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를 책임지는 핵심 산업이 타격을 받은 건 아니었습니다.

 

반면 이번의 쇼크는 실업자가 급등하는 문제로 그치지 않습니다. 국가의 미래 먹거리가 쓸려가고 향후 성장 동력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문제입니다.

 

🏚잠식되는 시장

차이나 쇼크의 조짐은 이미 나타났습니다. 미국의 전기차 기업 테슬라는 작년 4분기 중국의 BYD1위 자리를 내주었고, 유럽의 태양광 패널 업체는 25%가량 저렴한 중국산 제품에 밀려 줄도산을 맞았습니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에서 전기 자동차를 가장 많이 수출하고, 전기차에 쓰이는 리튬 이온 배터리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태양광 패널의 80%를 생산하는 국가입니다. 중국이 떠오른 만큼이나 미국과 유럽은 가라앉고 있습니다.


전망: 중국은 마음을 돌려먹을까?

미국이 이렇게 다급한 상황이니, 옐런이 전한 메시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이 됩니다. 한편으로는 중국에 저가 공세를 멈추라 촉구했을 테고, 다른 한편으로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시 관세를 매길 수밖에 없다는 은근한 협박을 곁들였겠죠. 하지만 중국이 순순히 미국의 권고를 따를지는 미지수입니다.

 

🛡시작된 대응

당연하지만 미국과 유럽이 손을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유럽은 작년 9월 중국의 전기차 기업이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았는지 조사에 착수했고, 최근 불법적인 재정 지원이 있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중국 전기차에 부과하는 기존 관세 10%에 더해 10%를 추가 부과하기로 결정했죠. 미국은 이미 중국 전기차에 27.5%의 관세를 매기는데요.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중국산 전기차 수입이 국가 안보에 위해를 가하는지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옐런의 요구

이 시점에 옐런이 방중한 건 중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미국은 중국이 경제를 운용하는 태도를 바꾸길 바랍니다. 그동안은 중국 정부가 직접 산업을 뒷받침하고 중국 기업이 수출을 확대해 경제를 키웠는데요. 그렇게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중국의 생산 능력을 내수 소비, 다시 말해 가계 소비가 따라가질 못했습니다.

 

생산량은 늘어나는데 국가 내부에서 소비하지 못하니 세계 시장에 덤핑하는 결과에 이르렀죠. 미국은 중국의 거시경제 운영이 필연적으로 교역 분쟁을 낳으리라고 경고합니다.

 

🛒 소비주도 성장으로?

요컨대 미국은 중국이 수출 주도 성장 모델에서 소비주도 성장 모델로 전환하길 강력하게 권합니다. 국가가 억지로 떠받쳐 과잉 생산한 상품을 수출할 생각 말고, 나라 내부에서 잘 처리해 보라는 말입니다. 정부가 돈을 들여 산업 생산 역량을 확충할 때가 아니라, 가계의 소비력을 키워 내수 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중국의 처지

하지만 중국으로선 수출을 포기하기가 어렵습니다. 당장 정부가 산업 투자를 줄이고 그로 인해 수출이 줄어든다면, 그 공백을 내수로 채우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중국의 내수를 떠받치던 부동산과 인프라 사업도 경기가 싸늘해진 상황입니다.

 

중국 정부로선 수출이 아니면 경제 성장의 방법이 없는 처지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성장 모델을 전환해야 한다고 해도, 당장 경제 성장률이 꺾이는 걸 결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 중국의 거절

아니나 다를까 중국은 미국의 경고에도 걸음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옐런이 중국에 머무는 동안에는 인민은행이 첨단 기술과 산업에 93조 원에 달하는 금융 지원을 제공한다고 밝혔고, 옐런이 떠난 직후에는 중국 정부가 오히려 산업 설비에 투자를 증대하는 계획을 발표했죠.


사실 옐런 장관이 중국에 찾아와 엄중하게 경고한 것부터 상황이 심각하다는 증거입니다. 옐런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중국과의 교역 관계를 중시하고, 자유무역 질서를 옹호하는 비둘기파 인사입니다.

 

그런 옐런이 중국의 저가 수출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관세를 부과하는 선택지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살벌하게 발언했다면, 미국의 인내심이 끝을 보였다는 신호로 읽어도 무리가 아닙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다시 전면적인 무역 전쟁에 휩싸일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떠돕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