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승계 등의 의혹으로 오랜 기간 재판을 받았던 이재용 회장이 최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검찰이 제기한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가 선고됐는데요. 우리나라 최대 기업의 승계와 관련된 내용이라 국민적 관심이 높았지만, 소송의 내용을 전부 알기에는 너무 복잡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삼성전자의 지배구조를 살펴보고 이재용 회장의 승계 과정에 어떤 의혹들이 있었는지 쉽게 정리했습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이해하기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이해하려면 크게 3개 회사에 집중하면 됩니다. 바로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전자인데요. 가장 꼭대기에 있는 삼성물산의 지분을 많이 가질수록 나머지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1️⃣ 삼성물산
삼성물산은 사실상 삼성그룹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지주회사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삼성물산의 주력 사업은 종합물류, 무역, 건설 등인데요. 주력 사업의 크기보다도 삼성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꼽히는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등등의 지분을 보유했다는 점에서 더욱 많은 관심을 받습니다.
2️⃣ 삼성생명
삼성생명은 보험업을 주력으로 하는 보험사입니다. 그러나 삼성생명 역시도 본업보다는 지분 구조를 살펴봐야 하는데요.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는 19.34%의 지분을 보유한 삼성물산입니다.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가 곧 삼성생명에서도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죠. 삼성물산 다음으로는 이재용 회장,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 등 오너 일가가 삼성생명 지분을 대량 보유합니다. 한편, 삼성생명은 삼성증권, 삼성카드 등 삼성그룹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대량 보유 중인 회사이기도 합니다.
3️⃣ 삼성전자
반도체와 가전, 스마트폰을 주력으로 하는, 삼성그룹의 핵심 회사입니다. 시가총액이 제일 큰 계열사이기도 하죠.
삼성그룹을 지배하려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는 8%가 넘는 지분을 보유한 삼성생명입니다. 그다음으로 삼성물산이 5%가 조금 넘는 지분을 보유하죠.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을,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이 연결고리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삼성전자를 손에 넣기 위해선 삼성물산의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삼성의 이재용 회장 승계 과정과 의혹
이재용 회장이 삼성그룹 전체에 대해 지배력을 가지려면, 결국 삼성물산의 지분을 많이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야 삼성생명, 삼성전자로 시작해 여러 계열사 전반에도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죠. 이를 이해하면 아래 승계 과정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필요해
원래 이재용 회장은 삼성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제일모직 지분을 대량 보유한 최대 주주였습니다. 당시 제일모직은 삼성생명의 지분을 대량 보유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충분하지 않았죠. 그래서 삼성그룹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합니다. 이재용 회장이 합병으로 만들어진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가 되면 자연스레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탄탄하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이재용 회장의 지분율 높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단순히 합병하게 되면 이재용 회장은 충분한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제일모직의 최대 주주더라도, 실적과 규모가 더 큰 삼성물산과 합병하게 되면 지분율 손실이 일어나기 때문이죠. 이재용 회장이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을 많이 갖게 하기 위해서는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는 높이고, 기존 삼성물산의 가치는 낮출 필요가 있었습니다.
📈 제일모직 기업가치 높이기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과정에서 제일모직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의 제약사 바이오젠과 합작해 삼성바이오에피스라는 자회사를 세웠는데요. 대형 제약사와의 합작으로 바이오 사업에 진출했다는 점 덕분에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그 모회사인 제일모직의 가치는 급격히 올랐습니다.
🤔 의혹 1: 콜옵션 누락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젠의 삼성바이오에피스 합작 비율을 85:15였는데요. 대형 바이오 회사인 바이오젠의 비율이 너무 낮아 보이는데, 여기에는 콜옵션이 숨어 있었습니다.
바이오젠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 절반을 언제든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콜옵션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래서 매우 낮은 지분율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합작 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삼성그룹은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과정에서 바이오젠의 콜옵션 보유 사실을 숨겼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 삼성물산 기업가치 낮추기
한편 기존 삼성물산은 건설 수주량이 줄어들고, 보유 자산이 축소되면서 기업가치가 낮아졌습니다. 결국, 제일모직과 기존 삼성물산은 1:0.35 비율로 합병됐는데요. 제일모직의 주식이 고평가받으면서 자연스레 제일모직의 지분을 대량 들고 있던 이재용 회장이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을 많이 가져가게 됐습니다.
🤔 의혹 2: 주주 권리 침해
이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기존 삼성물산의 주식 가치를 하락시켰다는 의혹도 따라붙습니다. 기존 삼성물산이 현금 자산을 회계 장부상에서 은폐하고, 수주할 수 있었던 건설 사업도 진행하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실적을 낮췄다는 것인데요. 기존 삼성물산 주가를 낮추고, 낮은 비율로 제일모직과 합병하는 과정이 주주들의 이익과는 반대된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에서 주주들이 손해를 입었고 한국 정부가 이에 가담했다며 국제투자 분쟁(ISDS)에 소송을 제기했고, ISDS는 우리 정부에 약 700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 승계 작업의 결말은
결국 이재용 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 약 18%를 보유한 최대 주주가 됐습니다. 삼성그룹으로선 성공적으로 승계 작업을 마친 셈이죠. 다만, 승계 작업 이후 후폭풍도 있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재무제표에 바이오젠의 콜옵션 보유 내용을 반영해야 하는데, 콜옵션은 부채로 반영됩니다. 이대로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어마어마한 부채를 보유하게 돼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요. 이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자회사가 아닌 관계회사로 바꿉니다.
자회사였다면 장부가를 기준으로 3천억 원으로 평가되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은 관계회사가 되며 공정가치로 평가돼 4조 8천억 원으로 늘었고, 자산이 늘어나며 자본잠식을 피해 갈 수 있었죠. 다만 검찰은 이 과정이 분식회계라고 판단하고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 경영권 승계 과정 3줄 요약
이재용 회장을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로 만들기 위해 제일모직과 기존 삼성물산을 합병했습니다.
제일모직에 유리한 비율로 합병을 진행할 필요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합병은 계획대로 진행됐고, 이재용 회장은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가 되며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불법 승계 의혹에 대한 법원의 판결
지난 2020년 9월, 검찰은 삼성그룹의 승계 과정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부당했다며 이재용 회장을 기소했는데요. 3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고 법원은 1심에서 이재용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 프로젝트 G 문건?
검찰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이재용 회장 승계 계획을 구체화한 ‘프로젝트 G’를 문제 삼았습니다. 적은 비용으로 승계를 마무리하기 위해 작성한 불법 승계 계획인이라고 주장하였는데요. 그러나 법원은 기업이 지분을 지키면서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은 정상적인 업무이며, 상속세 납부를 위한 계획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문건이라 불법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독단 X
검찰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이재용 회장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독단적으로 추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두 회사의 합병을 추진하는 태스크포스(TF)와 경영진, 이사회가 사업적인 내용까지 고려해 합병을 결정했다고 판단했습니다.
💸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시 주가조작?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에서 제일모직의 주식 가치를 높이의 주식 가치를 낮추며 다른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검찰의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거짓 정보 기재나 의도적인 정보 은폐가 없었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근거였습니다.
🖊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법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자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하며 지분의 장부가치를 4조 8천억 원으로 부풀렸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불법은 아니라고 판결했습니다. 당시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과도한 부채로 인한 사업 차질을 막기 위해 회계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했다는 평가입니다.
삼성의 남은 과제는?
💰 막대한 상속세 부담
삼성 일가는 12조 원이 넘는 상속세를 5년에 걸쳐 납부하고 있습니다. 상속세 납부를 위해 이재용 회장을 제외한 삼성 일가는 삼성전자 보통주를 3,000만 주 가까이 매각했고,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다른 핵심 회사의 주식도 어느 정도 처분했는데요. 다만, 이재용 회장은 배당금과 신용대출 등으로 상속세를 충당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으로 이재용 회장이 핵심 회사의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 지배력을 유지하며 상속세를 납부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입니다.
👑 수직적 지배구조 개선
이재용 회장과 삼성 준법 경영감시위원회는 삼성물산으로부터 시작되는 수직적인 지배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데요. 해외기업까지 다양한 지배구조 모델을 연구하고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뾰족한 해법을 찾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이재용 회장은 지난 2020년 경영권 4세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 적극 경영 나서야
그동안 이재용 회장은 재판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경영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미등기임원으로 남아있기도 한데요. 검찰이 항소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일차적으로 무죄 판결이 나온 만큼 사법 리스크를 덜고 더욱 적극적으로 경영에 나설 전망입니다. 실제로 이재용 회장은 무죄 선고 다음 날 UAE에 출국하며 본격적인 경영 활동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 등기 임원, 미등기임원
등기 임원은 주주총회에서 주주의 권한 위임으로 선출돼, 이사회에서 활동하는 임원을 말합니다. 이와 달리 비등기 임원은 기업의 필요에 의해 비교적 간단한 선출 과정을 거쳐 이사 직함을 얻는데요. 법적으로 등기 임원의 권한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이사회 참여나 이사회에서의 의결권 행사가 불가능합니다.
이재용 회장의 승계 과정에 대해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여전히 의혹은 남아 있습니다. 삼성그룹 역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수직적인 지배구조에 대해 한계를 느끼고 이를 바꿔나가기 위해 고심하고 있죠. 당장의 사법 리스크를 넘은 삼성이 사업적으로 성장하고, 지배구조도 성공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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