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틱톡, 텔레그램 등 거대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규제가 거세지고 있다는 소식, 얼마 전에 전해드린 적 있습니다. 소셜미디어 서비스(SNS)가 각종 사회 문제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인데요. 특히 청소년들이 유해한 콘텐츠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있다는 게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세계 각국이 점차 압박 수위를 높이자, 인스타그램에서 뒤늦게나마 사용자를 보호할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대책은 특히 청소년 사용자들에 초점을 맞췄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대책 중 가장 강력한 대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인스타그램이 발표한 청소년 보호 대책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인스타그램, 어떻게 바뀌는 거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구 페이스북)는 지난 17일(현지 시각)부터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 18세 미만 청소년 사용자의 계정을 ‘10대 계정’으로 강제 전환했습니다.
‘10대 계정’은 기본적으로 비공개 상태로 설정됩니다. 사용자의 계정이 공개 상태일 때는 누구나 사용자의 게시글을 볼 수 있고, 메시지(DM)를 보낼 수도 있지만, 비공개 상태가 되면, 아무나 사용자의 게시글을 열람하거나 메시지를 전송할 수 없게 되죠. 사용자가 팔로우하거나 서로 연결(맞팔로우)된 사람들끼리만 DM을 보낼 수 있고, 사용자를 팔로우하지 않는 사람들은 올린 게시물도 볼 수 없게 됩니다.
이 밖에도 10대 계정 이용자에겐 여러 제약이 생깁니다. 성적인 콘텐츠, 미용 시술 홍보 콘텐츠, 사람들이 싸우는 장면 등 민감한 콘텐츠를 시청할 수 없고, 1시간 이상 연속 사용 시 앱을 종료하라는 알림을 받게 됩니다.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는 ‘수면 모드’가 활성화돼 알림이 뜨지 않고, 누군가 메시지를 보내도 자동 답장이 발송됩니다.
만약 이용자가 16세 이상(글로벌 기준, 국내 기준 17세 이상)이라면 이 설정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6세 미만 이용자의 경우 부모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 계정을 관리하고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는데, 총이용 시간을 제한하거나 특정 시간대의 인스타그램 사용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지난 7일 동안 누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는지도 볼 수 있죠.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는 앞으로 60일 안에 10대 계정 전환이 완료될 예정입니다. 한국에서는 내년 1월부터 적용될 예정이라고 하죠.
왜 이렇게 바뀌는 거야?
최근 들어 청소년의 SNS 사용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SNS에 올라와 있는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에 무분별하게 노출된다는 점도 문제지만, 청소년들의 SNS 의존도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기 때문인데요. 10대 청소년들의 경우 중독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플랫폼 기업들이 SNS에서 헤어 나올 수 없도록 알고리즘을 의도적으로 설계했다는 비판이 계속됐습니다.
최근 벌어진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성범죄 사건도 SNS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줬습니다. 최근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성 착취물이 각종 SNS에서 무분별하게 유통되면서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는데, 특히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물이 기승을 부렸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죠.
세계는 이미 ‘청소년 SNS 금지령’
세계 각국은 이미 청소년들의 SNS 사용에 관해 거대 플랫폼 기업들을 규제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10월, 미국 41개 주는 메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메타가 어린이·청소년들이 중독되도록 SNS 기능을 의도적으로 설계해 정신건강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이유였죠. 플로리다주는 14세 미만 청소년은 SNS 계정을 만드는 것 자체를 금지하고, 15~16세는 부모 허가를 받아야 SNS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 중입니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15세 이하라면 SNS를 사용하기 위해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부모가 자녀의 SNS 계정을 중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개별 국가 차원이 아니라 아예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대책 마련에 나섰는데, 15세 이하 청소년의 SNS 사용을 처음부터 금지하는 방법이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호주는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이용을 금지하는 ‘SNS 연령 제한법’ 법안을 올해 안에 제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된다면, 국가 차원에서 SNS를 규제하는 세계 최초의 사례가 됩니다.
국내에서도 청소년의 SNS 이용을 제한하는 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에는 청소년의 하루 SNS 사용 시간 한도를 설정하는 법안, SNS 가입 연령 제한 법안 등이 발의돼 있습니다.
다른 플랫폼도 바뀌게 될까?
인스타그램만 아니라 유튜브나 틱톡 등 10대들이 자주 이용하는 SNS 플랫폼들도 관리에 나섰습니다. 유튜브는 부모가 청소년 자녀의 유튜브 계정을 관리할 수 있게 설정했습니다. 자녀 계정의 구독, 시청 기록, 댓글 등 모든 활동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틱톡도 마찬가지로 부모가 자녀의 계정을 관리할 수 있도록 했고, 만 14~15세 사용자는 메시지 수신이 제한되고 계정도 비공개로 설정되게 했습니다. 두 플랫폼 모두 청소년들의 계정에는 부적절한 콘텐츠의 노출을 관리하고 있죠.
인스타그램의 10대 계정 발표 이후로, 특히 10대 청소년들의 이용 시간이 압도적으로 높은 유튜브에서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국내 한 여론조사 기관에 따르면, 10대 이하 어린이·청소년이 8월 한 달 동안 유튜브를 사용한 시간은 3억903만 시간으로, 인스타그램(9898만)에 비해 3배 넘게 많았습니다.
현재 유튜브에선 청소년 계정을 부모가 관리할 수는 있지만, 부모의 관리가 의무적인 사항은 아닙니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에서 부모 동의를 의무적으로 받게끔 만들면서, 유튜브도 모든 청소년 사용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대책을 마련할지 기대를 모으고 있죠.
큰 변화이긴 하지만... 효과는 미지수
다만 이번 정책이 청소년들의 SNS 사용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한 SNS 플랫폼 이용에 제약이 생기면 또 다른 자유로운 플랫폼을 찾아갈 것이기 때문에, 계정을 비공개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을 하죠. 자정이 넘으면 게임 접속을 차단했던 ‘게임 셧다운제’처럼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책이 플랫폼 업계에서는 꽤 파격적인 시도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에요. 외국 주요 언론들은 ‘최근 수년간 보인 변화 중 가장 큰 변화’라는 평가를 하고 있는데요. 인스타그램 입장에서는, 이 정책으로 이용에 불편을 느낄 10대 사용자들이 동시에 대거 이탈할 위험을 감수하고 추진하는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최근 몇 년 사이 거대 플랫폼 기업을 향한 세계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마침내 기업들이 꼬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는데요. 인스타그램이 쏘아 올린 공은 플랫폼 업계에 어떤 변화의 바람을 불러오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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