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초 부쩍 잦아진 술자리, 잔 부딪히는 소리가 따라 커집니다. 평소라면 잘 먹지 않았을 술을 이때다 싶어 마시기도 하고, 평소라면 진작에 끝났을 술자리가 2차, 3차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때다 싶은 건 주류 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말과 새해를 노리고 한정판 제품이나 신제품을 속속 선보이는 등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끝없는 술의 세계
🍶 이렇게 다양할 수가!
여태껏 국내 주류 시장이 이렇게 다채로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술 하면 소주와 맥주뿐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엔 막걸리와 전통주, 와인과 위스키도 술자리에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원소주는 일품진로나 화요 같은 증류식 소주의 대중화를 불러왔고, 스카치나 버번 등으로 대표되는 위스키 역시 일반 대중에게도 많이 친숙해졌습니다. 제로 슈거 열풍은 주류 시장에까지 뻗쳤습니다. 제로 소주가 출시되는 등 시장에 나온 주류의 다양성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습니다.
📱 앱으로 사는 술
앱으로도 술을 즐기는 시대입니다. ‘데일리 샷’ 같은 전용 앱이나 대형마트·편의점 앱에서 간편하게 술을 사고 픽업할 수 있습니다. 유통 업계도 주문이 들어올 때 재고를 확보하면 되기에 재고 관리 부담을 덜 수 있고, 오프라인 매장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효과도 있어 주류 픽업 구매 서비스에 적극적입니다.
작년 12월 말 기준 데일리 샷의 누적 앱 설치수는 이미 120만 건을 넘었고, 앱으로 주류를 주문한 뒤 매장에서 수령하는 홈플러스의 ‘주류이지픽업’ 신규 고객 매출은 전체 매출의 50%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이에 편의점도 유사한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CU는 마켓 컬리와, GS25는 네이버와 손을 잡고 소비자가 원하는 주류를 온라인에서 구매하면 오프라인 매장에서 픽업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식당 예약 앱인 캐치테이블도 주류 배송 서비스를 새로 도입했죠.
🍺 술술 팔리는 술
2022년 기준 주류업체 전체 출고 금액은 9조 9,700억 원에 달합니다. 1년 전보다 13.3% 늘어난 수준으로,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5년 이후 가장 높았습니다. 경기 불황에도 빠르게 성장한 위스키 시장의 덕이 컸습니다. 작년 11월 기준 위스키 수입량은 2만 8,391톤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는데요. 위스키는 높은 가격 탓에 과거엔 고급 주종으로 여겨지곤 했지만, 최근 알성비(알코올 대비 성능)를 내세운 다양한 위스키가 수입되면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 혹시 주종이… 어떻게 되세요?
한국리서치에 따르면, 2022년 성인 음주율은 73.1%였습니다. 성인 10명 중 7명은 술을 마신다는 건데요. 그렇다면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주종은 무엇일까요?
지난 10년간 맥주의 음주율이 약 60~70% 선을 유지하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술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소주가 맥주와 10% 정도의 차이를 보이며 2위를 차지했고, 그다음으로는 막걸리(약 18%), 와인(약 17%), 양주(약 10%) 순서였습니다.
2021~2022년 1년 새 주종별 출고 금액의 성장률을 살펴봐도, 맥주 시장의 성장률이 14.4%로 가장 높았습니다. 시장 규모는 무려 4조 1,486억 원에 달하는데요. 2위인 희석식 소주 시장은 12.4% 성장하며 3조 9,842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 실적에 취한다. 취해
주류 업체는 실적에 취해 울고 웃습니다. 오비맥주는 작년 1~11월 자사 맥주 카스가 작년 1~11월 국내 맥주 가정시장의 42%를 점유하며 맥주 브랜드 1위라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유흥 및 외식 시장까지 포함한 맥주 시장점유율은 50%에 달합니다. 경쟁사 하이트진로를 따돌리고 12년째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죠.
하이트진로는 작년 상반기, 맥주 신제품 켈리를 야심 차게 선보였음에도 만년 2등의 꼬리표를 떼지 못했습니다. 작년 1~3분기 매출은 0.5% 올랐으나 영업이익은 47% 급감했는데요. 마케팅을 위한 출혈 경쟁이 심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소주 시장에서도 롯데칠성음료의 제로 슈거 소주 새로가 인기를 끌면서, 하이트 진로의 점유율은 70%에서 59% 정도로 쪼그라들었습니다. 롯데칠성음료는 새로가 출시 7개월 만에 누적 판매 1억 병을 돌파하며 반짝하는 듯 보였으나, 1~3분기 영업이익은 10.6% 감소했습니다. 주요 주류 업체가 실적 부진을 겪는 것은 홈술 문화의 확산과 무관치 않습니다.
술 한잔의 의미
사람마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취하고 싶어서, 누군가는 술자리가 좋아서 술을 마실 텐데요. 주류 시장은 사람들이 술을 어떻게 즐기는지에 따라 변화합니다. 술 마시는 행위가 일종의 문화가 된 순간, 주류 업체가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 고민해야 할 지점은 훨씬 다양해집니다.
🏠 홈술과 혼술
팬데믹의 영향으로 집에서 술을 마시는 ‘홈술’, 혼자 술을 마시는 ‘혼술’ 문화가 확산했습니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했던 2020년, 식약처의 주류 소비·섭취 실태조사 결과 사람들은 술을 덜 마시고, 주로 집에서 마시며, 혼자 또는 가족과 함께 마시는 것으로 달라졌습니다. 엔데믹 전환 이후에도 오픈서베이 조사에 따르면 작년 6월 기준 최근 한 달 내 홈술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약 85%였습니다. 이중 혼술은 26.7%로, 집에서 술을 마시는 이유로는 ‘음식과 함께 먹기 위해’ ‘기분 전환을 위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가 순서대로 꼽혔습니다.
🍾 먹는 술도 달라진다
홈술, 혼술로 음주 문화가 바뀌면서 사람들이 즐기는 대세 주종도 변했습니다.
주점이나 식당, 바에서 마시는 것보다 집에서 더 마시는 술 TOP3는 와인, 과일맥주, 위스키입니다.
반대로 밖에서 마시는 것보다 집에서 덜 마시는 술 TOP3는 소주, 고량주, 칵테일이었습니다.
혼자서 가볍게 술을 즐기는 혼술 인구의 증가는 논알콜 맥주 시장이 성장하는 발판이 되기도 했습니다. 국내 논알콜 맥주 시장은 2014년 81억 원에서 2021년 약 200억 원으로 2.5배가량 규모가 커졌습니다. 카스 0.0, 칭따오 논알콜릭, 하이트 0.00등 다양한 논알콜 맥주 제품이 출시됐습니다.
🥳 MZ가 술을 즐기는 법
빠르게 변화하는 주류 소비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주류 시장은 20·30세대가 다양한 방식으로 술을 즐기는 문화에 주목합니다. 최근 술과 음료 등을 섞어 마시는 믹솔로지(mixology), 증류주나 전통주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 캐릭터와의 콜라보나 새로운 맛의 술이 인기를 끄는데요. 특히 위스키나 전통주 등 증류주에 탄산수를 섞은 하이볼은 믹솔로지의 대표 주자로서 최근 주류 시장의 판도를 주도하는 모양입니다. 하이볼을 직접 집에서 만들어 먹는 사람이 늘면서 주류 업체도 관련 제품을 내놓고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이트진로는 작년 11월 위스키 브랜드 커티삭을 출시하며 위스키 시장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작년 8월, 위스키 브랜드 제임슨은 잠실 롯데월드몰에 100평 규모의 체험형 팝업스토어를 열어 하이볼 바를 선보였고,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는 건대 커먼그라운드에 팝업스토어를 열어 칵테일 만들기 체험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점점 더 개인화, 차별화된 취향을 보이는 MZ세대를 겨냥하기 위해 감각적인 라벨 디자인이나 독특한 이름의 술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 술 권하는 사회?
한편 유튜브 등에서 편하게 술을 마시며 방송하는 ‘술방’이 최근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작년 유튜브 최고 인기 영상은 가수 이영지가 술을 마시며 진행하는 토크쇼 ‘차쥐뿔-카리나 편’(3일 기준 조회 수 1,682만 회)이었는데요. 신동엽이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는 콘셉트로 진행하는 ‘짠한 형’, 기안84의 ‘술터뷰’ 등도 인기몰이 중입니다. 다만, 술방 유행이 음주의 유해성을 미화한다는 비판이 커지자, 정부는 유튜브와 OTT에도 적용되는 미디어 음주 장면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 Do you know 막걸리?
라면이나 김밥 등 전 세계적으로 높아진 K-푸드에 대한 관심은 K-술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집니다. 작년, 한국 술은 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높은 수출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하이트진로의 소주 수출량은 6년 연속 증가해 2022년 기준 소주 수출액이 억 2,000만 달러(약 1,572억 원)를 돌파했습니다. 특히 달달한 과일소주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처음처럼과 순하리 등 주류를 수출하는 롯데칠성음료 역시 작년 K-푸드 수출탑을 수상했습니다.
날개 단 주류 시장
🧾 주류 시장에 불어올 큰바람
새해 첫날부터 주류 시장에 긴장을 불어넣을 새로운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바로 국산 주류에 세금을 매길 때 적용되는 기준 판매 비율인데요. 기준 판매 비율은 주류에 부과되는 세금에서 세금부과 기준인 과세표준을 줄여주는, 세금 할인율입니다. 지금까지 국내 주류에는 판매 비용과 마진이 포함된 반출 가격에 세금이 부과됐지만, 수입 주류에는 이를 포함하지 않은 수입신고 가격에 세금이 부과돼 국산 주류의 세금 부담이 더 크다는 역차별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에 기준 판매 비율을 낮춰 국내 주류업체와 수입 주류업체가 동등한 여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겁니다. 그 결과 국내 소주 업체들은 일제히 출고가를 내렸고, 앞으로 국산 주류와 수입 주류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 ️술의 맛을 즐기는 시대
주류 시장이 주목하는 홈술과 혼술 트렌드는 올해도 계속될 듯 보입니다. 사람들은 오프라인 매장에는 재고가 없어 구하기 힘든 술을 온라인에서 주문할 수 있고, 가까운 편의점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술을 살 수 있다는 편리함에 익숙해졌기 때문인데요. 팬데믹을 거치며 모임이나 회사 등에서 술자리 참석 또는 음주를 강요하던 분위기가 사그라든 것도 한몫합니다. 이제는 술에 어울리는 음식을 술과 함께 즐기는 페어링이 중요해지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술을 소비하려는 경향이 짙어졌습니다. 술과 술자리에 대한 인식 자체가 뒤바뀌면서, 주류 업체는 이런 변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 높아지는 K-술의 위상
전 세계에서 K-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올해는 한국 술의 글로벌 위상이 더욱 높아지는 기회가 될 예정입니다. 주류 업계는 수출 확대 등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할 전망입니다. 하이트진로는 글로벌 소주 시장 확대를 위해 베트남과 싱가포르에 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미국 프로야구 MLB LA다저스 경기장에 광고를 띄우는 등 해외 사업 확장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지평막걸리를 생산하는 지평주조는 올해 미국과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막걸리 수출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한국 전통 식재료의 특징을 살린 K-칵테일을 개발하는 등, 술 한 잔에 한국만의 정체성을 담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 새로운 도전은 계속된다
술의 맛이나 향과 함께 술 자체를 즐기는 문화가 발달하면서, 주류 업체들은 소비자의 마음을 얻으려는 다양한 시도를 예고했습니다. 롯데칠성음료는 주류 신사업 팀을 만들어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섰는데요. 작년 11월 맥주 신제품 ‘크러시’를 출시한 데 이어, 올해 초에는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를 출시할 계획입니다. 믹솔로지 시장 점유를 위해 토닉워터 사업을 강화한다는 의지도 밝혔습니다. 하이트진로는 내수 주류시장에 한계를 느끼자, 스타트업 등에 과감한 투자를 감행하며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습니다. 작년에만 397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나물 가공 업체와 팝콘 제조업체 등에 투자했는데요. 식음료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 기업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도 활발한 투자를 이어가며, 여러 산업을 발굴하는 중입니다.
주류 시장을 관통하는 핵심은 ‘변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 촘촘해진 소비자들의 선호와 취향에 부응하기 위해선 기존의 소품종 대량생산 시장에서, 다품종소량생산 시장으로의 변화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새해 주류 업계의 힘찬 도약의 종착지는 어디일지, 함께 지켜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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