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채권단 체제에서 한화의 품으로, 한화오션
작년 1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윤석열 대통령 간의 통화 내용이 국내에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이 직접 한국의 조선업을 언급하며, 선박 수출뿐만 아니라 보수, 수리, 정비 분야에서도 한국 조선업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기 때문이죠.
트럼프 당선인의 러브콜과 함께 20년 만에 조선업 업황 초호황기, 일명 슈퍼사이클이 돌아왔다는 기대감으로 국내 조선업 관련 주식 종목이 폭등하는 상황인데요. 오늘은 20년간의 고난과 상장 폐지 위기를 겪고 한국 조선업의 대장주로 우뚝 올라선 한화오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K-조선 선봉장, 그 이름은 한화오션
🚢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한화오션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종합 조선·해양 기업입니다. 1973년 10월 대한조선공사의 옥포조선소로 설립된 이래 50년 이상 상선, 화물선, 특수선, 해양플랜트 등 다양한 선박 및 구조물을 설계·건조했죠. 현재 경남 거제시에 본사를 둔 한화오션은 직원도 8천 명 이상입니다.
🇰🇷 한국 조선업의 자존심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빅3’라고 불리는데, 최근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수주 성과를 거둔 기업입니다. 작년 들어 11월까지 한화오션의 누적 수주 성과는 LNGC(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컨테이너선, 암모니아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종을 위주로 총 39척, 총액 78억7천억 달러(11조 6천억 원)에 달했는데요.
비록 70억 8,700억 달러를 수주한 HD현대중공업, 60억 달러 상당을 수주한 삼성중공업과 큰 격차는 나지 않았지만, 2023년 한화오션의 연간 수주액이 35억 달러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년 대비 2배 이상의 성과를 달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 초격차 비결, 무엇 덕분일까?
한화오션의 성공 비결로는 타사에 비해 압도적인 R&D 투자, 그리고 이에 따라 구축된 기술적 역량이 꼽힙니다. 한화오션은 최근 5년간 R&D 비용으로 3,600억 원을 지출했는데요. 동기간의 전체 매출액 대비 R&D 지출액 비율이 빅3중 가장 높았죠.
특히 한화오션은 방산 분야와 친환경 선박 기술 역량 강화에 집중합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우리 해군이 발주한 총 24척의 잠수함 중 17척을 건조했고, 국내 조선사 중 유일하게 잠수함 수출 실적을 내기도 했죠. 작년에는 무탄소 추진 LNG 운반선을 공개하는 등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데는 충분한 투자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 최근 실적은?
다만 2021~2023년 한화오션은 선박 원가의 20%가량을 차지하는 철판(후판) 가격 폭등 및 과거의 저가 수주 영향으로 누적 3조 5천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최악의 3년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작년은 2023년에 비해 약 40% 증가한 10조 2천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1,5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흑자 전환이 기대되죠.
올해 또한 전망이 나쁘지 않은데요. 작년에 비해 소폭 증가한 매출과 5천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죠. 이미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로 3.5년 이상의 충분한 일감을 확보한 상황이기 때문에 당분간 실적 호조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22년의 채권단 체제, 마침내 한화의 품으로
💶 전신은 대우조선, 이어진 채권단 체제
한화오션은 20년 이상 이어진 채권단 체제의 역경을 극복한 부활의 아이콘으로도 유명합니다. 원래 대우그룹의 일부였지만, IMF 이후 대우그룹이 해체되며 혹독한 워크아웃 절차를 거치게 됐죠. 2001년 대우조선공업의 채권 1조 원 이상을 보유한 산업은행이 41%의 지분을 취득하며 22년에 걸친 채권단 관리 체제가 본격 시작됐습니다.
🔎 채권단 관리: 어떤 기업이 부실화했을 때, 해당 기업에 자금을 대여해준 채권단의 주도로 구조조정과 경영 혁신을 통해 해당 기업의 회생을 시도하는 것을 의미하죠. 하이닉스 역시 2011년 SK그룹에 인수되기 전 10여년간 채권단 관리를 거쳤습니다.
📉 처절한 업황 부진, 이어진 분식회계
이후 대우조선은 해양플랜트 사업, 풍력발전 등 사업다각화를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저유가에 의한 업황 부진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저유가로 인해 중동 선주는 선박 발주를 줄였고, 해양 유전 개발의 채산성이 감소해 해양플랜트 사업마저 침체기로 빠져들었기 때문이죠. 이에 2015년에는 한 분기에 3조 4천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는데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2016년 최소 5조 원 이상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2016년에는 상장폐지 위기에도 몰렸습니다.
🔎 분식회계: 경영 성과가 실제보다 좋아 보이도록 회사의 자산, 이익 등을 고의로 조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결국 공적자금 투입, 이어진 공중분해 위기
결국 벼랑 끝에 몰린 대우조선은 2000년대 초반에 이어 또다시 정부로부터 대규모 공적자금을 수혈받습니다. 2015년 10월 4조 2천억 원을 시작으로 2016년과 2017년 추가로 4조 7천억 원이 더 투입됐는데요. 하지만, 2022년에는 파업으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후 이미 2001년부터 누적 12조 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정부는 더 이상의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으며 파산 위기 직전까지 갔죠.
🤝 방산 제국 꿈꾸던 한화의 품으로
그러던 중 대우조선은 극적인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2022년 12월 한화그룹이 대우조선의 지분 49%를 인수하는 본계약을 체결하며 마침내 22년간의 채권단 체제에 마침표를 찍은 것입니다. 대우조선은 이제 한화오션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한화디펜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한화그룹의 방산 계열사와 함께 한국 방산업의 새 역사를 쓰는 기업이 됐습니다.
20년 만의 슈퍼사이클, 더 기대되는 이유는?
🚀 20년 만에 찾아온 슈퍼사이클
최근 한화오션의 주가는 말 그대로 폭등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기준 한화오션의 주가는 4만5천 원을 기록했는데요. 이는 2년 전 한화그룹이 대우조선을 인수할 때 지불했던 금액인 주당 1만 9,150원의 2.3배에 달합니다. 주가 상승의 핵심 원인으로는 무려 20년 만에 찾아온 조선업 슈퍼사이클이 꼽히죠.
조선업은 노후 선박 교체 수요 등으로 통상 15~20년마다 초호황기가 찾아옵니다. 2004~2008년 지속됐던 직전 슈퍼사이클에 이어 이번에 20년 만에 슈퍼사이클이 도래했다는 기대감이 차오르는 건데요. 특히 이번 슈퍼사이클은 EU와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탄소배출 규제로 단가가 높은 친환경 선박 발주가 증가한 점 때문에 더욱 주목받습니다.
💰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 수익성 기대
친환경 선박 발주의 증가는 해당 분야에 오랜 기간 투자를 이어오며 입지를 굳힌 국내 조선업계의 희소식입니다. 특히 한국 조선업계는 대당 3,500억 원에 이르는 고부가가치 선종인 LNG 운반선 건조 시장에서 2023년 80%, 2024년(1~3분기 기준) 60%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상당한 우위를 자랑하는지라 더욱 그렇죠. 이는 중국 조선업과의 경쟁을 통해 대당 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컨테이너선, 유조선(탱커선)을 저가로 수주하기보다 고부가가치 선박에 집중하려는 전략의 일부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화오션 역시 무분별한 출혈 경쟁이 아닌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 위주의 수주 전략을 내세웁니다. 작년 10월 기준 LNG 운반선이 전체 상선 수주 잔량의 70%를 차지하며 향후 실적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동기간 LNG 선박 수주 잔량이 전체 상선 중 차지하는 비율이 삼성중공업의 경우 63%, HD현대중공업의 경우 37%임을 고려하면 한화오션은 빅3 중에서도 가장 공격적인 선별 수주 전략을 펼치는 중이라 말할 수 있죠.
⚔ 최대 과제는 중국, 앞으로의 명운이 걸렸다
그러나 전망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중국 조선 기업의 부상이 가장 큰 위협으로 꼽히는데요. 작년 기준 컨테이너선의 88%, 유조선(탱커선)의 74%, 벌크선의 80%를 독식한 중국 조선업계가 이제는 한국 조선업계의 텃밭이었던 LNG 선박까지 침범합니다. 실제로 중국 조선업계는 2024년 1~3분기 전 세계 친환경 선박의 70%를 수주했고, 10월 기준으론 LNG 운반선 점유율도 38%까지 상승했죠. 전체 상선 수주 잔량의 2/3 이상이 LNG 운반선으로 친환경 선박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화오션에는 큰 위기입니다.
🔎 컨테이너선, 탱커선, 벌크선: 컨테이너선은 컨테이너로 포장된 건조 화물을 수송하는 선박을, 벌크선은 곡물·석탄·원자재 등을 따로 컨테이너에 포장하지 않고 수송하는 선박을, 탱커선은 원유 등 액체 화물을 비포장 상태로 수송하는 선박을 말하죠.
🏗 과감한 승부수, 필리조선소 인수
이런 상황에서도 한화오션의 주가가 오르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차기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대항해 자국 해군력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한화오션의 힘을 빌릴 것이라는 관측 때문인데요. 한화오션은 작년 6월 미국의 필리(Philly) 조선소를 1억 달러에 인수하며 기대감을 더했습니다. 추후 필리조선소에 1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해 한국 조선소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춘 곳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죠.
🇺🇸 세계 최강 미군의 함정, 한화오션이 생산한다고?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를 미국 진출의 전진기지로 활용, 미군 함정 유지·보수(MRO) 사업만 아니라 나아가 잠수함, 구축함 등 군함 건조 프로젝트까지 수주하겠다는 포석입니다. 실제로 작년 미 해군 군수지원함 ‘윌리 시라’함과 급유함 ‘유콘’함의 MRO 사업을 한국 조선업 최초로 수주하며 본격적으로 미국 방산 시장 진출 시대를 열었습니다. 미국의 함정 MRO 시장이 연간 20조 원 규모이고, 군함 건조 시장은 가늠조차 안 된다는 분석이 있는 만큼 앞으로의 퀀텀 점프가 기대되는 대목입니다.
이미 각 분야에서 중국과 혈투를 벌이는 한국 제조업의 현황에서 알 수 있듯, 한국과 중국 기업 간 기술격차는 사실상 소멸한 상황입니다. 2023년 산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가치사슬 종합경쟁력 평가에서 중국 조선업계는 90.6점, 한국 조선업계는 88.9점을 기록하며 한중 간 조선업 경쟁력은 이미 역전됐다는 분석마저 나오죠.
이제 한국 기업은 중국 기업과 직접 경쟁하기보다는 그들이 수월하게 진입할 수 없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한화오션이 미국 군함 유지·보수(MRO) 및 건조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매우 현명한 포석으로 보입니다. 한화오션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한국 조선업의 새로운 먹거리를 개척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